항목 ID | GC04205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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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正奎 |
영어음역 | Gim Jeonggyu |
이칭/별칭 | 포해,김한(金寒)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철규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
[활동 사항]
김정규(金正奎)는 경상남도 통영 출신으로, 1924년 1월 대구노동공제회 제5차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3월에는 남선노농동맹에서 상무집행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9월 일본으로 유학하여 주오대학[中央大學]에 입학하였다가 1925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독일어과로 옮겼다. 재학 중 사상 단체인 일월회(一月會)에 가입하여 위원이 되었으며, 기관지 『해방 운동』의 동인이 되었다. 그 해 조선공산당 일본부에 입당하여 제2차 조선공산당에서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으로 만주부에서 활동하고, 1926년 2월 고려공산청년동맹 일본부를 거처 일본 총국 2대 책임비서를 지냈다. 1926년 7월 일본 경찰에 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신간회 활동에 관계했으며 한때 대구경찰서에 연행되어 취조를 받았다.
1945년 경상남도 도인민위원회 재정부장, 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남도위원회 재정부장 등의 직책을 맡아 부산에서 활동하였다. 1960년 12월 서울에서 사회당 결성에 참여하고 중앙조직위원장이 되었으며, 1961년 2월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 결성에 참가하였다. 1967년 대통령 선거 시기에 야권 후보 단일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김한(金寒)으로도 불렸다. 1973년 1월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