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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탕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044
한자 加德宕巾
영어의미역 Tanggeon: a Horsehair Skullcap Formerly Worn by Officials under Their Hats|Tanggeon Indigenous to the Gadeok Island
이칭/별칭 가덕치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윤용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관
재질 말총
용도 모자
생산|제작처 가덕도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가덕도에서 만들었던 조선 시대의 탕건.

[개설]

조선 시대 가덕도는 탕건의 생산으로 유명하였으며, 가덕도에서 생산된 탕건을 가덕 탕건(加德宕巾)이라 하였다. 가덕치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남자들은 머리에 상투를 틀고 상투 위에 망건과 탕건을 썼으며, 이러한 탕건의 원료는 말총[말 꼬리 털]이었다.

조선 전기 가덕도에는 나라에서 쓰이는 말을 기르는 목장인 국마장(國馬場)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따르면, ‘웅천현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둘레가 75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편찬된 『목장 지도』[1678]는 가덕도 목장이 17세기에 이미 폐지되었다고 전한다.

[연원 및 변천]

조선 전기의 가덕도 주민들은 가덕도 국마장에서 조달한 말총을 활용해서 탕건을 가내 수공업의 방식으로 생산하였다. 17세기 이후에는 가덕도 국마장이 폐지되었으나 제주도 등지에서 조달된 말총을 써서 탕건을 계속 생산하였다. 가덕 탕건은 전국으로 이름이 알려질 만큼 가덕도 지역의 특산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50년대까지도 가덕도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생산되었다.

[형태]

가덕 탕건은 짜는 올수에 따라 최하 60올부터 200올, 300올, 400올의 제품으로 구분되었다. 300올과 400올과 같이 올이 많을수록 고급품이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가덕도에는 가덕 탕건과 관련된 민요가 구전되고 있다. ‘가덕 첨사 십년에 오백줄탕건을 못써보고 / 지물에 살푼넘었네’라는 「탕건 노래」가 전해진다. 가덕 첨사도 쓰고 싶어 한다는 비유를 써서 우수한 가덕 탕건의 품질을 노래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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