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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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梁館語學所 |
영어음역 | Choryanggwan Eoaksso |
영어의미역 | Choryanggwan Language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 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1873~1880년까지 부산 초량 지역에 있었던 일본 외무성의 통역관 양성 기관..
[설립 목적]
초량관어학소는 일본의 외무성에서 조선어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메이지 유신 후 번(藩)이 폐지되고 현(縣)이 설치됨에 따라 대외 관계를 직접 관할하게 된 외무성은 쓰시마 번의 조선어 교육 체제와 인재를 인수하는 형태로 1872년(고종 9) 10월 25일 대마도 이즈하라[嚴原]에 외무성 이즈하라한어학소를 설치하였다. 이즈하라한어학소는 이듬해인 1873년(고종 10)에 당시 일본 공관이 있던 부산 초량관으로 이전되었고, 이에 외무성 초량관어학소가 개소하였다. 조선 침략의 선봉인 통역관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쓰시마 지역의 고위층 자제 34명이 입소해서 1년 동안 배우고 졸업하였는데, 이 가운데 10명은 조선어를 더 잘하기 위해 부산 초량 왜관으로 유학을 왔다. 초량관어학소는 일종의 조선 분교였는데, 1895년(고종 32) 명성 황후(明成皇后) 시해 사건 때에 투입된 자객 가운데 2명이 이 초량관어학소 출신이었다.
1873년에 설립된 관립 도쿄외국어학교[현 도쿄외국어대학]에 1880년(고종 17) 조선어학과가 설치됨에 따라 초량관어학소는 폐지되었고, 초량관어학소의 교수와 학생은 외무성에서 문부성으로 이관되는 형식으로 신설된 도쿄외국어학교 조선어과에 합류하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초량관어학소는 조선어 통역관을 양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우리글을 읽거나 풀이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떤 경우에도 막힘이 없어야만 하고 수준 높은 교양인으로서 말을 쓸 수 있도록 가르쳤다.
[의의와 평가]
초량관어학소는 쓰시마 지역의 고위층 자제들을 대상으로 하여 조선어 통역관을 양성하는 기관이었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 일본인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는 종교 기관도 있었다. 1877년 초량관어학소와 같은 장소에 설립된 동본원사 부산별원에서는 일본인 거류민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치기 위해 1878년 한어학사(韓語學舍)를 설립하였다. 이 한어학사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포교 활동을 하기 위한 개교사(開敎師)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었다.
동본원사 부산별원은 임진왜란 직전 조선 정탐을 목적으로 파견되었던 오쿠무라 죠신[奧村淨信]에게서 조선 포교의 연원을 찾을 만큼 개설 때부터 문화적 침략주의를 분명히 드러내는 기관이었고, 초량관어학소는 조선 침략의 선봉인 통역관을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