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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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甄萱 |
영어음역 | Gyen H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후백제 |
집필자 | 이정희 |
[정의]
남북국 시대 왕건(王建)에게 부산 영도의 말을 선물한 후백제의 건국자.
[가계]
본래 성은 이씨(李氏)였으나, 후에 견(甄)으로 고쳤다. 아버지는 장군 아자개(阿慈介)로, 상주 가은현(加恩縣)[지금의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어머니는 상원 부인(上院夫人) 혹은 남원 부인(南原夫人)이다.
[활동 사항]
견훤(甄萱)[867~936]은 후백제를 건국한 후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고려 태조 왕건과 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런 도중에 924년(태조 7) 8월 견훤이 절영도[현 영도]의 명마 1필을 왕건에게 바쳤다는 내용이 『고려사(高麗史)』에 나온다. 당시는 견훤과 태조가 첨예하게 대립하여 싸움이 잦았던 시기로, 태조는 1개월 전에 부하 장수를 잃고 곤경에 처해 있었다. 이럴 때 견훤이 절영도의 명마를 선물한 것은 대립 관계를 완화시켜 상대방을 방심케 하려는 의도와 함께 후백제가 한반도 남단까지 장악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상징적인 행위로 보인다. 이듬해 견훤은 점치는 술사(術師)로부터 절영도 말을 고려에 그대로 두면 후백제가 망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반환할 것을 요청하여 말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대세는 후백제가 아닌 고려 쪽으로 기울었고, 그 결과 부산의 위상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묘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 18-1번지에 견훤의 묘로 전해지는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에는 1970년 견씨 문중에서 세운 ‘후백제 왕 견훤릉’이라고 적힌 묘비가 있다. 견훤릉은 1981년 12월 2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 산 170-1번지 숭위전(崇威殿)에서 견훤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4월 10일 정오에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