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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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湜 |
영어음역 | Yu Sik |
이칭/별칭 | 류식(柳湜),낙서(樂棲)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상기 |
[정의]
임진왜란 때 김해읍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의병.
[가계]
본관은 문화. 자는 낙서(樂棲). 좌의정 유만수(柳曼殊)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중종 때 왜적을 정벌한 공신이자 전라 수사인 유용(柳墉)이고 아버지는 현령 유서종(柳緖宗)이다. 부인은 상주 김씨이며, 남편을 따라 죽어 무덤은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에 있다.
[활동 사항]
유식(柳湜)[1552~1592]은 1552년(명종 7) 경상남도 김해군 하동면[현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마산]에서 태어나 학문에 열중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4월 왜적들이 월당진[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월촌리]을 건너서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김해읍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부사 서태원은 이미 진주로 도망갔고, 경상 우병사 조대곤도 포기하고 지원하지 않았다. 이에 성에 남아 있던 세 명의 장수인 송빈·이대형·김득기와 더불어 김해읍성을 지키려다 1592년 4월 20일 41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묘소]
유식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옷과 신발을 넣은 묘와 비가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수정 마을 뒤 수참산 중턱에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이 평정된 뒤 유식과 함께 싸운 세 명의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 사충단(四忠壇)을 쌓았으며, 유식은 통정대부 병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1884년(고종 21) 이조 참판으로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