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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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皇后 |
영어음역 | Heohwanghu |
이칭/별칭 | 허황옥,보주 태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이연심 |
[정의]
부산 지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의 비이자 김해 허씨(金海許氏)의 시조모.
[활동사항]
허황후(許皇后)[33~189]의 다른 이름은 허황옥(許黃玉)이다. 허황후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바다를 건너와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과 혼인하였다. 국왕 부부가 낳은 11명의 자녀 가운데 10명이 아들이었는데, 8명은 수로왕의 성을 따서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되었고, 2명은 허황후의 간청에 따라 김해 허씨가 되었다고 한다. 허황후와 수로왕의 혼인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와 「금관성 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 조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 관련 기록에 의하면 9간(干)에 의해 추대된 수로왕은 토착 세력의 처녀 가운데 왕비를 간택할 것을 요청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와 혼인하였다.
허황후의 도래 설화에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허황후의 출신지에 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 동점(東漸)[점점 세력을 넓혀 동쪽으로 옮겨 감]에 대한 이야기라는 설, 아유타국은 일본에 있던 가락국의 분국이라는 설, 기원전 1세기 인도 아요디아 왕국이 태국에 건설한 식민국 아유티야 또는 아요디아에서 중국 사천성 보주(普州) 지역으로 집단 이주한 허씨족(許氏族)이 옮겨 왔다는 설, 낙랑 지역에서 도래한 유이민 혹은 상인이었다는 설 등이 있다.
허황후의 출신지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은 허황후가 바다를 건너올 때 한사잡물(漢肆雜物)[한나라의 여러 가지 호화로운 물건]을 잔뜩 가져온 것, 천부경·종정감·사농경 등 중국계 관직을 칭한 것, 황옥(皇玉)이라는 이름이 중국 ‘황제’와 관련 있다는 것 등이다. 이런 것들로 보아 허황후는 북방 유이민 집단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허황후 집단의 출현은 기원전 2세기 초반 위만 조선의 멸망과 한나라 군현 설치 이후 김해 지역과 북방 지역의 인적·물적 교류의 산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외 교역에 유리한 김해 가락국의 입지 조건이 허황후의 도래를 통해 보여 주는 선진 문물의 상징인 ‘선박 신앙’과 결합된 것이다.
[묘소]
허황후가 묻힌 수로왕비릉은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119-3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보주 태후(普州太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