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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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在喜 |
영어음역 | Gwak Jaeh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32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윤재 |
[정의]
근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의사.
[가계]
형은 곽재성(郭在成)이고, 부인은 부산 동산의원장 김형기(金炯璣)의 딸이다. 1939년 부산 초량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한 정봉금과 결혼하여 5남매를 두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활동 사항]
곽재희(郭在喜)[1905~?]는 1905년생으로, 본적은 경상남도 부산부 초량[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이다. 1916년 부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32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의학부를 졸업하였다. 우리나라는 1924년에 최초의 대학인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어 그 전에는 전문학교만 있었기 때문에 곽재희의 일본 대학 의학부 졸업은 당시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곽재희는 1935년 8월 게이오대학으로부터 경비 전액을 지원 받아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15회 국제 생리학 대회에 참석하였다. 이 대회에서 곽재희가 영어로 논문을 발표한 것을 두고 『조선 중앙 일보』는 “부산이 낳은 유일한 의학자이며, 조선 학도로서 세계적 회합에 진출하기는 곽씨가 효시”라고 소개하는 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학술 대회가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출신 연구자가 주제 발표를 한 것도 희귀한 사례여서 화제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1938년 1월 부산 영정(榮町)[현 부산광역시 중구 대창동]에 제생외과(濟生外科)를 개원하였다. 1967년 병원 이름을 제생의원으로 바꾸었다.
[학문과 저술]
1938년 게이오대학에서 「온혈 동물의 제종(諸種) 신경 섬유 단일 분리 적출」이라는 논문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58년 제2회 부산시 문화상[자연 과학 부문]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