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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303
한자 河吉鍾
영어음역 Ha Giljong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영화감독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41년 4월 13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8년 - 중앙초등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수학 시기/일시 - 1954년
수학 시기/일시 1956년 3월 - 중동중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56년 4월 - 중동고등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59년 -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64년 - 샌프란시스코예술아카데미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65년 9월 - UCLA대학원 영화과 진학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단편 영화 「어느 날」 연출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단편 영화 「나의 환자」 연출
1967년 - 「나의 환자」로 IIE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69년 - 단편 영화 「병사의 제전」 연출
1969년 - 「병사의 제전」으로 메이어 장학금 수령
활동 시기/일시 1972년 - 장편 데뷔작 「화분」 연출
활동 시기/일시 1972년 4월 20일 - 부산대학교 영화연구회 강연
활동 시기/일시 1974년 - 「수절」 연출
활동 시기/일시 1975년 - 「바보들의 행진」 연출
활동 시기/일시 1975년 - 영상시대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76년 - 「여자를 찾습니다」 연출
활동 시기/일시 1977년 - 「한네의 승천」 연출
활동 시기/일시 1978년 - 「속 별들의 고향」 연출[부산 로케]
활동 시기/일시 1978년 - 전국 신인 남녀 신인 배우 선발 대회[부산] 심사 위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9년 - 「병태와 영자」 연출[부산 로케]
활동 시기/일시 1979년 - 제15회 백상 예술 대상 영화 부문 특별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79년 2월 28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9년 - 유고 수필집 『백마 타고 온 또또』 출간
추모 시기/일시 1981년 - 하길종 영화 논집 『영상, 인간 구원의 메시지』 출간
추모 시기/일시 1982년 - 평론집 『사회적 영상과 반사회적 영상』 출간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학교|수학지 중앙국민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경남중학교 -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 3가 1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중동중학교 -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2동 692
학교|수학지 중동고등학교 -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1동 618
학교|수학지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 서울특별시 관악구 대학동 산239-1
학교|수학지 샌프란시스코예술 아카데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학교|수학지 UCLA대학원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활동지 부산 미공보원 - 부산광역시
활동지 서울예술전문대학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활동지 태평양화학 강당 - 부산광역시 중구
묘소 광주 공원묘지 -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매산리

[정의]

197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부산 출신의 영화감독.

[활동 사항]

하길종(河吉鍾)[1941~1979]은 1941년 4월 13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1948년 부산 초량의 중앙국민학교, 1954년 경남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56년 형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 중동중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59년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불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하길종은 잠시 신필름에 입사하였으나 196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예술아카데미에서 사진 예술과 미술을 공부한 뒤에 9월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대학원에서 이론 학위[MA]와 실기 학위[MFA]를 모두 취득하였다.

미국에서 하길종은 「어느 날」[1965], 「나의 환자」[1967], 「병사의 제전」[1969]이라는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병사의 제전」은 당시 미국에서 불고 있던 히피 운동을 자기 방식으로 소화한 것인데, 이 영화로 MGM 영화사가 미국 전역의 최우수 학생 4명에게 수여하는 메이어 장학금을 받기도 하였다. 아서 펜(Arthur Hiller Penn) 감독의 연출부에 들어가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UCLA의 강사직도 보장되었지만, 1970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하길종은 곧바로 김지하(金芝河) 각본의 「태인 전쟁」을 연출하려 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이효석(李孝石) 원작의 「화분」[1972]을 연출하였다. 「화분」의 원작은 푸른 집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성적 탐닉을 그린 것이었지만, 하길종은 이를 단주라는 순수한 인물에게 가해지는 집단적이고 위선적인 폭력을 고발하는 영화로 바꾸어 놓는 모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 영화를 표절했다는 논란과 함께 평단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흥행에서도 실패하였다.

1974년 한사군(漢四郡) 시대의 폭군을 다룬 「수절」을 발표하였지만, 이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하길종의 초기작은 이전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실험 정신과 정치적 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하길종은 이 고비에서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였다. 이렇게 해서 연출한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은 그의 대표작이자,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영화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바보들의 행진」은 이길 수 없는 세상에 저항하는 무모한 젊은이의 이야기, 그렇기에 두고두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최인호(崔仁浩)의 원작이 주는 신세대 풍속도와 낭만, 하길종의 각색이 불어넣은 시대에 대한 풍자와 허무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영화도 역시 그의 전작들처럼 검열에서 30분 정도가 잘려 나갔다. 1976년에는 김주영(金周榮) 원작의 「여자를 찾습니다」를 연출하였지만 비평과 흥행 모두 실패하였고, 1977년에는 우수 영화 선정을 노린, 오영진(吳泳鎭) 원작의 「한네의 승천」을 연출하였다.

말년에 하길종은 고향인 부산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78년에는 이장호 감독 「별들의 고향」의 속편인 「속 별들의 고향」, 1979년에는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인 「병태와 영자」를 연출하였다. 최인호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두 작품은 모두 부산에서 로케이션 촬영한 것으로,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8년에는 부산 태평양화학 강당에서 개최된 전국 신인 남녀 신인 배우 선발 대회에 심사 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연출 이외에도 하길종은 강연이나 강의, 영화 비평 방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72년 4월 20일에는 부산대학교 영화연구회가 개최한 ‘제4회 영화 음악의 밤’ 행사에 초청되어, ‘최근 미국 영화의 새 경향’이라는 제목으로 부산 미국 공보원에서 강연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교 등에서 영화를 강의하였으며, 뒤에 서울예술전문대학의 영화과 초대 학과장을 지냈다.

비평가로서 외국 이론과 작가를 누구보다도 일찍이 국내에 소개하였으며, 동료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도 매서운 비판을 가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1977년과 1978년에 월간 『뿌리 깊은 나무』에 연재한 월평은 특유의 직설적인 비평으로 많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하길종은 또한 영화 운동가이기도 하였다. 유신 체제에 빠져 암흑기를 걷고 있던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영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75년 이장호, 김호선(金鎬善), 홍파(洪坡), 이원세, 변인식과 함께 ‘영상시대’를 결성해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를 위해 다양한 영화 운동을 벌였다. 1979년 2월 28일 하길종은 39세라는 한창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병태와 영자」가 한창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던 때였다.

[사상과 저술]

고등학교 시절에는 까뮈(Albert Camus)에 심취하였고, 대학 시절에는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을 겪은 하길종은 실의에 빠져 여행을 다닌 후에 자비를 털어서 『태를 위한 과거 분사』[1962]라는 초현실주의풍의 시집을 엮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당시 유행했던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흐름을 몸소 경험하였고, 이때 관심을 가졌던 히피 운동은 뒤에 그의 단편 영화들에 반영되었다.

귀국 후 영화 7편을 연출하였고, 사후에 유고 수필집 『백마 타고 온 또또』[예조각, 1979]와 평론집 『사회적 영상과 반사회적 영상』[전예원, 1982]이 제자 박평식의 교정을 거쳐 출간되었다. 1981년엔 하길종 영화 논집 『영상, 인간 구원의 메시지』[예조각]이 나왔다. 비평가로서의 활동과 함께 번역도 하였는데, 하길종이 번역한 책으로는 『엑소시스트』[범우사, 1974], 『뿌리』, 『스타워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한진출판사, 1977], 『캐리』[1978], 『미지와의 만남』[1979] 등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매산리 광주 공원묘지에 마련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7년에 단편 영화 「나의 환자」가 IIE상을 수상하였고, 1969년에 단편 영화 「병사의 제전」으로 메이어 장학금을 받았다. 1979년 제15회 백상 예술 대상 영화 부문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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