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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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戊寅 |
영어음역 | Heo Mui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3가 6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선애 |
[정의]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여성 정치가.
[활동 사항]
허무인(許戊寅)[1908~1974]은 1908년 11월 13일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서 5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허수(許洙)이고, 어머니는 윤영순이다. 1923년 김해공립보통학교[현 동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산공립고등여학교[현 마산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고학으로 어렵게 학교에 다니다가 5학년 때인 1929년에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의 산청공립보통학교[현 산청초등학교]와 경상북도 안동시의 사립화산학교에서 4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였다. 교사 재직 중 잠시 근우회 경남지부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31년 결혼한 후 특별한 사회 활동 없이 10년간 4남매를 키우며 가정에 충실하였다.
1953년 45세가 되던 해에 초대 부산시 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지방 자치 단체 의원으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 시 의원이 되었다. 1955년 부산시 의회의 문교사회분과 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시 의원으로 활동한지 1년도 못되어 남편과 사별하였다.
1954년 박순천(朴順天)을 회장으로 결성된 관변 단체인 대한부인회의 부산지부 회장으로 여성 운동에 나섰다. 1958년에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 부지사장으로 활동하였고 부산부녀기술원을 운영하였으며, 1963년 부산부녀장학회와 한국부인회 부산지부의 회장을 지냈다. 1966년 부산시 시정 자문 위원, 1968년 여성저축생활중앙회 부산지부 회장, 1970년 부산시청 어머니회장, 1971년 부산어린이회 관장, 1972년 부산시 새마을운동협의회 회원 및 가정의례실천추진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1973년 유신정우회[유신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추천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국회 의원들이 구성한 원내 교섭 단체] 소속으로 9대 국회 의원이 되었다. 보건사회위원회에 속하였던 국회 활동은 여성 문제가 중심을 이루었다. 구체적인 활동은 영세 부녀자와 직업여성을 위한 탁아 시설 증설, 직업여성의 승진과 급여 불평등 개선, 윤락 여성에 대한 계몽·선도, 지방 여성 단체의 재정적 지원, 국립부녀직업보도소 설치 등이었다. 그러나 허무인의 여성 정책은 양성평등이라는 관점과 달리, 남성과 국가를 완벽하게 보조하는 내조자로 여성의 위치를 한정시켜 가부장적 국가 체제를 지지 옹호하였다. 국회 의원에 당선된 1년쯤 지난 1974년 12월 4일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