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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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汝一 |
영어음역 | Whang Yeoil |
이칭/별칭 | 회원(會元),해월헌(海月軒),매월헌(梅月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지현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회원(會元), 호는 해월헌(海月軒)·매월헌(梅月軒).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첨의평리문하시중을 역임한 황서(黃瑞)의 후손으로, 증조 할아버지는 황세충(黃世忠)이고 할아버지는 성주 목사 황우(黃瑀)이며 아버지는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 황응징(黃應澄)이다.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영덕 정씨(盈德鄭氏)로 충무위 사직(忠武衛司直) 정창국(鄭昌國)의 딸이다.
[활동 사항]
황여일(黃汝一)[1556~1622]은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춘추기사관, 승문원 부정, 회룡전 사관을 거쳤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종군하여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났다. 함흥에서 승리한 공으로 1593년 형조 정랑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명나라 장수 이영춘(李榮春)을 찾아가 화전법(火戰法)을 배우고 돌아와 보급에 힘썼다.
1594년(선조 27) 권율(權慄)의 종사관으로서 행주대첩에서 공을 세워 2등 공신이 되었으며, 이듬해 진주 전투에도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1598년(선조 31)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가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감수를 받아 세계 지도를 제작하였다. 그 후 예천 군수, 길주 목사, 동래 부사를 역임하였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황여일은 1615년(광해군 7) 4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 1618년 7월 그만두었다.
[학문과 저술]
문집인 『해월집(海月集)』을 남겼고,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쓴 『조천록(朝天錄)』이 있다. 황여일이 제작한 세계 지도가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묘소]
황여일의 묘는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71년(현종 12)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명계서원(明溪書院)에 배향되었다. 1997년 후손들이 신도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