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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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泰齊 |
영어음역 | Jeong Taeje |
이칭/별칭 | 동망(東望),국당(菊堂),삼당(三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순순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동망(東望). 호는 국당(菊堂)·삼당(三堂). 아버지는 이조 좌랑 정양우(鄭良佑)이고, 부인은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딸이다.
[활동 사항]
정태제(鄭泰齊)[1612~1669]는 1635년(인조 13)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1639년(인조 17)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사간원 헌납을 거쳐 이듬해 이조 좌랑, 1642년(인조 20) 이조 정랑, 홍문관 응교, 사헌부 집의, 1644년(인조 22) 사간원 사간,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645년 정조사(正朝使)로 청나라 연경(燕京)에 갔을 때 순치제(順治帝)에게 간청하여 볼모로 잡혀 있던 봉림 대군(鳳林大君)의 귀국을 허락받았다.
조선에 돌아와서 밀양 부사가 되었으나 공청 감사(公淸監司) 임담(林墰)과 유탁(柳濯)의 모반 사건에 엮여 유배되었다. 얼마 후 풀려나 삼사(三司)의 벼슬을 거쳐 이조 참의, 승지를 지냈으며, 1659년(현종 즉위년) 11월 동래 부사로 나갔다. 동래 부사 재직 중 몰래 가속을 밀양(密陽)에 데려다 놓고 빈번이 찾아간 것이 발각되어 의금부에 넘겨졌다. 공작미(公作米)[일본과의 무역 대금으로 지불한 쌀] 문제로 왜인과 다툼이 일자 과격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장계를 올렸다가 구금되었으며, 의금부로부터 ‘수령으로서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유배형을 받았다. 1661년(현종 2)에는 백성들에게 공작미를 과다 징수한 것이 문제되어 벌을 받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국당배어(菊堂俳語)』와 한문 소설 『천군연의(天君衍義)』가 있다.
[묘소]
정태제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음촌(陰村)에 있다. 여주 능마리에 있던 것을 이장하였는데, 시신이 미라 상태였고, 함께 묻은 사초(史草)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