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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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裕身 |
영어음역 | Yi Ushin |
이칭/별칭 | 덕중(德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상원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덕중(德仲). 증조 할아버지는 이초기(李楚奇)이고, 할아버지는 이지성(李之星)이며, 아버지는 이준상(李寯相)이다. 어머니는 김이오(金以嗚)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유신(李裕身)[1698~?]은 1725년(영조 1)에 통덕랑으로서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30년(영조 6)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거쳐 1731년(영조 7) 2월 진해 현감, 10월에 다시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1734년(영조 10) 서원(西原) 현감, 1737년 사헌부 장령을 거쳐 1743년(영조 19)에는 진하 겸 사은사 서장관으로 발탁되어 중국 심양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1746년(영조 22) 북쪽 변방의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폐사군도(廢四郡圖)」를 작성해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해 6월에 동래 부사에 임명되었지만 8일 후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10월에 승지에 임명되었다.
1749년(영조 25) 대사간, 1751년 여주 목사, 공주 목사를 거쳐 1755년(영조 31) 10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동래 부사로 있었을 때 인삼 밀매를 적발하여 그 돈을 국고에 귀속시켰으나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 드러나 파직당했다. 1757년(영조 33) 1월 강원도 관찰사로 승진하였고, 1760년(영조 36) 승지, 1761년 경기 수군절도사, 1763년 대사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