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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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民逸 |
영어음역 | Yun Minil |
이칭/별칭 | 현세(顯世),지산(芝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지현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현세(顯世), 호는 지산(芝山). 증조 할아버지는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이고, 할아버지는 윤지함(尹之諴)이며, 아버지는 호조 좌랑 윤엄(尹儼)으로 서화에 필법에 조예가 깊었다. 어머니는 예조 판서 김주(金澍)의 딸이다.
[활동 사항]
윤민일(尹民逸)[1564~1635]은 1596년(선조 29) 문과에 급제하였다. 성균관 전적, 병조와 예조의 좌랑, 형조 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602년(선조 35) 세력을 잡은 정인홍(鄭仁弘)[1535~1653]이 서인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임진왜란 때 왜와 화의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성혼(成渾) 등을 탄핵하였다. 이에 윤민일은 성혼의 문인으로서 파직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수원 판관으로 발령이 났다. 그 후 개성부 경력(開城府經歷), 합천 군수, 성균관 전적 등을 거쳐 1618년(광해군 10) 동래 부사가 되었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윤민일은 1618년 7월 동래에 부임하여 1621년(광해군 13) 5월 임기를 채우고 퇴임하였다. 회답 겸 쇄환사로 일본에 다녀온 강홍중(姜弘重)[1577~1642]의 『동사록(東槎錄)』에 의하면 윤민일은 영해 부사로 있으면서 1624년(인조 2) 9월 4일 안동에 도착한 통신사 일행을 접대하였다. 1627년(인조 5) 안산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1606년(선조 39) 서천 군수를 지낸 이후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에 선정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