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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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致道 |
영어음역 | Bak Chido |
이칭/별칭 | 학계(學季),검암(黔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순순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학계(學季), 호는 검암(黔巖). 아버지는 진사 박충정(朴忠挺)이다.
[활동 사항]
박치도(朴致道)[1642~1697]는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80년(숙종 6) 지평이 되었다.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에 있을 때 절도정배(絶島定配)[죄인을 외딴섬으로 귀양 보냄]와 추록훈(追錄勳)[공신 명단에 이름을 추가시킴]을 신중히 처리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듬해 도당록(都堂錄)[홍문관 벼슬 후보의 명단]에 오르고, 1682년(숙종 8) 북평사(北評事)·부수찬·지평, 1683년 장령·부교리·헌납·집의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684년(숙종 10) 8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동래 부사 재임 시 도주환도고지차왜(島主還島告知差倭), 등성통(藤成通), 봉진압물 1인, 반종 5명, 격왜 40명 등이 서계(書契)[일본과 조선이 주고받은 공식 외교 문서]를 지참하고 부산에 왔다. 이에 박치도는 “1682년(숙종 8) 통신사행 때 조선은 별차왜(別差倭)의 파견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 문서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이번 보지차왜(報知差倭)는 규정에 없는 사절인 만큼 약조에 의거하여 접대를 허락하지 말아야 하고, 당연히 이들이 가져온 서계도 베껴서 보고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내용의 장계를 올렸다. 1685년(숙종 11) 9월 파직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승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