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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062
한자 朴齊寬
영어음역 Bak Jegwa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현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반남
대표관직 동래 부사|이조 판서
출생 시기/일시 1834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59년 - 증광 문과 을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67년 - 경기도 암행어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71년 - 안동 부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74년연표보기 - 동래 부사에 임명
부임|활동지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521-46지도보기

[정의]

개항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활동 사항]

박제관(朴齊寬)[1834~?]은 반남 박씨(潘南朴氏)로 명성 황후(明成皇后)의 일가인 민씨파에 속했다. 1859년(철종 10)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이 권력을 잡고 있던 1867년(고종 4) 경기도 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의 숙청, 우수 관리의 표창, 지방 제도 개선 등에 공헌하였다. 1871년(고종 8) 안동 부사에 이어 영해부 안검사(寧海府按檢使)로 나가 민란을 진압하였다. 고종(高宗)이 친정을 시작한 1874년(고종 11) 박제관정현덕鄭顯德)의 후임으로 동래 부사에 임명되었다.

19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조선 침략이 좌절되어 사가[佐賀]의 난 등 내란이 일어났다. 이에 일본 정부는 정치적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대만 침공을 단행하였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대만 공격은 조선을 침략하지 못한 여분을 푼 것이다. 따라서 조선 침략은 시기가 문제일 뿐’이라며 조선 침략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에 조선 정부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의 사정을 알아보고 박제관에게 일본의 사신 모리야마 시게루[森山茂]와 교섭하도록 하였다. 이후 충청도와 경기도의 관찰사를 거쳐 이조 판서, 공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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