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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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戇 |
영어음역 | U Dang |
이칭/별칭 | 류당(柳戇),직보(直甫),천수재(踐修齋),효간(孝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지현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직보(直甫), 호는 천수재(踐修齋). 감사 유색(柳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수찬을 지낸 유겸명(柳謙明)이다.
[활동 사항]
유당(柳戇)[1723~1794]은 1753년(영조 29) 문과에 급제하여 1756년(영조 32)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다. 그해 신경(申暻)이 자신의 외조부인 박세채(朴世采)의 문묘 배향을 청한 것은 잘못이라고 간하였다가 영조(英祖)의 노여움을 사서 삭직당했다. 1775년(영조 51) 영해 부사로 나갔으나 이듬해 정조(正祖)가 즉위하여 내직으로 불러들이고, 특별히 동래 부사에 임명하였다.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에 따르면 유당은 1776년 7월 동래 부사에 부임하여 1777년 9월 퇴임하였다. 『정조실록(正祖實錄)』에 의하면 유당은 동래 부사 재임 시 조세, 무역, 국방, 군역에서 발생하는 폐단에 대한 해결책을 임금에게 올렸다. 이후 동부승지·안동 부사·병조 참의·성균관 대사성·이조 참의·형조 참판·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80년(정조 4) 홍국영(洪國榮)이 실각한 후 홍국영의 일파로 지목되어 파직되었으나 1788년(정조 12) 사면되어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형조 판서·성균관 대사성·강화 유수·공조 판서를 역임하고, 1793년(정조 17)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조선 후기 낙론(洛論)의 대표적인 학자인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상훈과 추모]
1827년(순조 27) 효간(孝簡)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