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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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國譯官使入船之圖 |
영어의미역 | Map of Vessels Entering the Jos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경흠 |
[정의]
조선 후기 부산진 영가대를 출발한 조선 문위행이 대마 부중으로 입항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개설]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朝鮮國譯官使入船之圖)」는 부산진의 영가대를 떠난 조선의 문위행(問慰行)이 대마 부중(對馬府中), 즉 이즈하라[嚴原]로 입항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조선 역관사는 문위행을 가리키던 대마도 쪽 용어이고 사료에 따라서는 도해 역관(渡海譯官)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문위행은 왜학 역관(倭學譯官)이 정사(正使)로 임명된 것으로, 대마 도주가 에도[江戶]에 참근 교대(參勤交代)한 것을 위로하거나 대마 도주·막부[幕府]의 경조사를 위로·하례하기 위해 1630년대 이후 모두 54차례 파견되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대마도였다.
문위행이라고 하는 외교 사절은 조선 후기의 중국 사행 중 역관이 정사로 파견된 뇌자행(賚資行)과 대비될 수 있다. 뇌자행은 중국에 상주문을 올리고 책력을 받아오고 표류민을 송환해 오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명칭을 통해서도 등급을 알 수 있듯이 통신사는 문관 고급 관리가 정사로 파견된 ‘사(使)’였고, 대마도로 파견된 문위행은 역관이 정사로 임명된 ‘행(行)’이었다. 문위행의 규모는 당상관 1~2인, 당하관 1인 외에 군관·포수·취수 등을 포함하여 적을 경우에는 40~50명이었지만 대개 70명 선을 넘었다.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에서 볼 수 있듯 문위행은 2척의 배로 출발하였고 대마도에서 파견된 재판 차왜(裁判差倭)가 해로를 안내하였다. 대마도 측의 예인선이 해로를 안내하고 바람이 없을 때는 조선 배를 밧줄로 연결하여 해안에 접안하기도 하였다.
[형태 및 구성]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에는 조선 배를 인도하는 대마도 배와 조선 배에 줄을 연결해 선착장으로 인도하는 작은 예인 선단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본래 문위행의 파견을 요청하러 부산진의 초량 왜관에 파견되었던 재판선(裁判船)이 뒤따르고 있다. 또한 문위행이 배에서 내려 대마 도주의 거처로 들어가는 장면이 눈에 띈다.
[특징]
지금까지 문위행을 묘사한 그림으로 알려진 것은 일본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學] 도서관에 소장된 「조선 역관 행렬 지도(朝鮮譯官行列之圖)」와 조선인 화원인 유숙(劉淑)[1827~1873]의 「범사도(泛槎圖)」 등 2점이 있었다. 그러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가 발견됨에 따라 통신사 행렬도에 비해 극소수에 불과했던 문위행 행렬도의 존재 여부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조선 역관 행렬 지도」는 1855년(철종 6)에 파견된 문위행을 묘사한 그림이다. 「범사도」는 1856년에 왜학 김계운(金繼運)이 문위행의 정사로 파견되었다가 풍랑을 만나 귀환한 내용을 그의 아들 김석준(金奭準)이 화원 유숙에게 얘기하여 그리게 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풍랑으로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행렬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범사도」는 문위행의 파견시 풍랑으로 인한 재난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이다.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는 도서 인(印)으로 보아 1932년에 국립중앙도서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도서관에 들어온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종이가 부식되어 아랫부분은 손상된 상태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남아 있는 일본 고서나 서화 자료는 대체로 조선총독부 도서관 시절에 구입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런 것들은 외견상 통신사 관계 자료가 많다. 예를 들어 통신사가 경유하는 일본의 각 번(藩)에서 조선인 문사와 일본 문사가 주고받은 필담 창화류(筆談唱和類)가 대표적이다.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의 제작자는 대마대정(對馬大町)의 판원 삼목옥 희좌위문(板元三木屋喜左衛門)인데, 그는 「조선인 도해선지도(朝鮮人渡海船之圖)」라는, 이른바 우키요에[浮世繪][호색풍의 민속적인 그림]의 지본 목판(紙本木板)을 개판(開板)한 인물이다.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는 삼목옥(三木屋)이란 사람이 민간에 판매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외교적 의례가 그림으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의식의 전형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게 마련인데,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는 그림 자체만으로도 중요성을 갖는다. 「조선 역관 행렬 지도」와 「범사도」에 이어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가 발견됨으로써 통신사 행렬도에 비해 극소수에 불과했던 문위행 행렬도의 존재 여부가 주목을 받게 된 점에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