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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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得仁 |
영어음역 | Gim Deokin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정형 |
[정의]
조선 전기 부산 동래 출신의 효자.
[활동 사항]
김득인(金得仁)은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족보에 그의 아들 김진구(金振雊)가 1612년(광해군 4)생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1570(선조 3)~1580(선조 13)년 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집이 너무 가난하여 끼니를 대기 어려웠으나 자신은 굶으면서도 어머니는 식사 걱정을 하지 않도록 정성껏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죽자 황령산 아래에 장사 지내고, 무덤가에 움막을 지어 3년 동안 시묘(侍墓)를 살면서 지극정성으로 묘를 돌보았다. 어머니의 삼년상이 끝나자 아버지의 묘를 어머니 묘 쪽으로 옮기고 또 다시 3년간 시묘를 사는 등 9년 동안 부모의 상을 치렀다.
이 무렵 흉년이 들어 동래부의 왜노(倭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노략질을 하다가 김득인이 시묘를 하는 움막에까지 이르렀는데, 김득인이 정성을 다해 죽은 부모를 섬기며, 묘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무릎을 꿇고 칭찬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왜노들은 이 일대에서는 감히 노략질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김득인에게 미역을 따다 주기도 하고, 쌀과 향을 보내는 등 존경을 표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김득인의 지극한 효성을 전해 듣고 1472년(성종 3) 쌀, 콩, 종이류 등을 관리하는 풍저창(豊儲倉)의 부봉사(副奉事)[정9품] 벼슬을 주었다. 또한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정려를 내렸다고 한다. 1514년(중종 9) 임금의 명으로 펴낸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의 득인 감왜 본국(得仁感倭本國) 편에 김득인의 효행을 실어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 본받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