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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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上甲 |
영어음역 | Bae Sanggab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세 |
[정의]
제6대와 7대 부산 시장을 지낸 정치인이자 행정 관료.
[활동 사항]
배상갑(裵上甲)[1908~?]은 1908년 12월 9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 4년을 수료하고 귀향하여 양조업에 뛰어들어 밀양주조주식회사 사장, 김해주조주식회사 사장을 거쳐 김해운수회사 사장을 지내는 등 양조업과 운수업으로 재산을 모았다. 이를 기반으로 1938년 4월 김해읍회 의원이 되었고, 1941년에는 경남도회 의원에 선임되는 등 지역의 저명인사가 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김해읍회 및 경상남도회 활동은 일제 식민 통치에 동조한 결과가 되어 후에 친일 경력의 낙인이 되기도 하였다.
해방 후 김해주조회사와 대신주조회사 등을 경영하면서 경남주조조합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이를 바탕으로 부산상공회의소 의원이 되는 등 부산 지역으로 활동 기반을 넓혔다. 배상갑이 정치 활동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54년 2월 자유당의 김해군 갑구 당 부위원장에 선출되면서부터다. 배상갑은 정계에 입문한 지 1년 만인 1955년 2월 24일 제6대[민선은 4대] 부산 시장에 선출되어 1959년 2월 23일까지 4년간 재임하였다. 1959년 3월 19일 다시 제7대 부산 시장에 임명되었다.
배상갑이 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부산시의 주요 변화로는 구제(區制)의 제정을 들 수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동안 일본식 주소를 그대로 쓰다가 1946년 동명(洞名)을 우리말로 바꾸고, 1949년 부제(府制)를 시제(市制)로 변경하였다. 그 후 1957년 1월 구제가 새로 마련되어 부산시는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등 6개 구로 나누어졌다. 제7대 부산 시장이 된 지 한 해 만인 1960년 봄 4·19 혁명이 발발, 배상갑은 부산 지역 부정 선거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반정부 시위대의 표적이 되었고, 시위대의 공격으로 서대신동의 자택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4월 25일 부산 시장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