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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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方勵 |
영어음역 | Gim Bangryeo |
이칭/별칭 | 여용(汝用),축은(築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북정 마을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은정 |
[정의]
부산 지역에 묘소가 있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용(汝用). 호는 축은(築隱). 할아버지는 광정대부·첨의평리·상호군 영부사 겸 판부사를 지낸 김원현(金元絃)이고 아버지는 판도 판서 김대덕이다. 아들은 문과에 급제하여 청도 군수를 지낸 김순생(金荀生)이고, 손자는 세종(世宗) 때 진사를 지낸 김계인과 한림·예문관 검열·사헌부 집의·참판·한성 부윤을 지낸 김계희(金係熙)이다.
[활동 사항]
김방려(金方勵)[1324~1423]는 1363년(공민왕 12) 덕흥군(德興君)의 난 때 교주도[현 강원도]에서 징병관을 역임하였고, 부사신으로 사신 전녹생(田祿生)과 함께 원나라에 다녀왔다. 1375년 이첨(李詹), 전녹생, 정몽주(鄭夢周) 등과 이인임(李仁任)의 친원 정책을 반대하다가 김해 퇴은에 유배되었다. 1388년(창왕 1) 위화도 회군 때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웠다. 후에 김해 퇴은으로 낙향하였고, 1423년(세종 5) 세상을 떠났다. 김방려의 행적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족보인 『종부시사 축은공 행장(宗簿寺事築隱公行狀)』에 기록되어 있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축은집(築隱集)』이 있다.
[묘소]
김방려의 묘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