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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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Gregorio de Cespedes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규 1 |
[정의]
부산 지역에 방문한 최초의 서양인 신부이자 임진왜란 당시 종군 신부.
[활동 사항]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1551~1611]는 1551년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세스페데스는 살라망까 예수회신학교에 입학하여 5년간 신학을 공부하였고, 1569년 1월 28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에는 순방 신부였던 알레한드로 발리그나노(Alejandro Valignano)를 따라 인도의 고아 지방으로 가서 1년 6개월간 체류한 바 있다. 신부가 된 후 1577년 일본으로 옮겨가 주로 교토[京都]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 후 1611년 12월 고쿠라[小倉]에서 60세를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34년간 일본에서 천주교 전파를 위해 일하였다.
세스페데스는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당시 일본의 고위층과도 교분을 넓혀갔다. 1585년 4월 세스페데스가 오사카[大阪]에서 수도원장으로 일할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방문을 받은 일도 있었고,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세례명을 가진 고시니 유키나가[小西行長]와의 교분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일본 교구장이었던 신부 페드로 고메스(Pedro Gomez)의 요청으로 세스페데스는 나가사키[長崎]를 떠나 쓰시마 섬[對馬島]을 거쳐, 1593년 12월 27일 한국 남해안에 도착하였다. 세스페데스가 고시니 유키나가 휘하의 군대가 주둔해 있던 진해 근처 웅천에 도착한 것은 그 이튿날인 12월 28일이었다. 세스페데스는 이때부터 부산 등 경상남도 일원에 1년 가까이 체류하면서 종군 신부로 일했다. 세스페데스는 조선인에 대한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져, 경상도 일대의 해안 지방에 머물면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4통의 서간문을 남겼다. 왜군들 외에도 조선인과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정황은 상세하지 않다. 그러나 이때부터 조선의 상황은 극동으로 진출했던 예수회 신부들에 의해 서구 사회에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