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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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英圭 |
영어음역 | Jo Yeonggyu |
이칭/별칭 | 옥첨(玉瞻),국헌(國獻)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39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보정 |
[정의]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에서 순절한 문신.
[가계]
본관은 직산(稷山). 사헌부 지평 조변(趙抃)의 5세손으로, 고조 할아버지는 무주 현감 조소동(趙召仝)이고, 증조 할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조명눌(趙明訥)이며 할아버지는 오위 부사과(五衛副司果) 조순거(趙順琚), 아버지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조준(趙準)이다.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이고, 아들은 조정로(趙廷老)이다.
[활동 사항]
조영규(趙英圭)[1535~1592]는 전라도 장성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기상과 완력이 뛰어났다. 1554년(명종 9) 스무 살 되던 해 붓을 던지고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참외(訓鍊參外)에 임명되었다.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 판관(判官)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제주 판관(濟州判官), 무장 현감(茂長縣監) 등을 지냈다. 아버지의 상(喪)을 당해 짐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상을 마치고 만경(萬頃), 영암(靈巖), 용천(龍川), 낙안(樂安), 영해(寧海) 등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양산 군수로 있을 때 왜군이 부산을 침범하여 동래로 진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가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을 만나서 함께 싸울 것을 약속하였다. 조영규는 양산에 있는 노모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다시 동래읍성으로 들어가 송상현과 함께 항전하다 순절하였다. 당시 조영규의 나이는 58세였다.
[묘소]
조영규의 시신을 찾을 수 없어 아들 조정로가 가묘를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상훈과 추모]
1667년(현종 8) 장성의 사림이 조영규와 조정로를 모암서원(慕巖書院)[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에 배향하였고 1669년(숙종 22) 양산 충렬사(忠烈祠)[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배향되었다. 부산에서는 1709년(숙종 35) 옛 송공단 터의 충렬사 별사에 위패를 모셨다가 1736년(영조 12) 충렬사[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