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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개동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842
한자 崔介同
영어음역 Choe Gae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공태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성별
출생 시기/일시 1573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임진왜란 발발 이후안적사 일원에서 왜군 소탕과 피난민 보호
몰년 시기/일시 1594년 10월 15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활동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활동지 앵림산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안적사 밑
묘소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 산 27-9

[정의]

임진왜란 당시 부산 출신의 의병.

[가계]

경주 최씨 사성공 휘예파 참봉공위이다.

[활동 사항]

최개동(崔介同)[1573~1594]은 1573년 기장현 남면[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에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4월 16일 동래읍성이 무너지고 이어 기장 방면으로 진격해 오는 왜군들을 대항할 길이 없자, 기장 지역의 관리들과 백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평소 힘이 세고 용맹을 자랑하던 최개동도 가족들과 함께 안적사(安寂寺) 밑에 있는 앵림산 속으로 피신하였다.

왜군들은 마을을 떠나 산중에 숨어 있던 백성들을 찾아다니며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최개동은 사냥할 때 항상 갖고 다니던 활로 왜군들을 찾아다니면서 죽였다. 이에 왜군들이 최개동이 숨어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앵림산으로 수색하러 왔다. 이를 정탐한 최개동은 계곡으로 수색반을 유인하여 격전을 벌려 거의 소탕해 버렸다. 이후 기장 지역의 많은 피란민들은 최개동을 의지하고 살았다. 1594년 10월 15일 최개동은 왜군들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 산27-9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이 끝난 후 병조 참판으로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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