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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689
한자 仙巖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服藏遺物
영어의미역 Relics from Seated Wooden Amitabha Statue in Sunam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백양산로 138[부암3동 628]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은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16일연표보기 - 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58년 - 복장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 발원문 제작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93년 - 복장에서 발견된 중수 발원문 제작
현 소장처 선암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백양산로 138[부암3동 628]지도보기
복장 유물 소장처 선암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백양산로 138[부암3동 628]지도보기
성격 불상|복장 유물
재질 목조[불상]|종이[복장 유물]
크기 불상: 90㎝|조성 발원문: 22.8㎝[가로], 269.5㎝[세로]|중수 발원문: 27.5㎝[가로], 128.0㎝[세로]
소유자 선암사
관리자 선암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선암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조선 후기의 복장 유물.

[개설]

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仙巖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은 나무로 만들어진 불상으로, 현재 부산 지역의 조선 시대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불상이다. 불상의 복장[腹藏: 불상을 조성할 때 불상의 배 안에 사리와 불경 들을 넣는 일, 또는 그 사리나 불경을 이르는 말]에서 문서 3종이 발견되었는데, 이중 불상의 조성과 중수에 관한 발원문이 확인되어 불상의 제작 시기와 화원(畵員)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은 모두 한지에 해서체의 묵서로 씌어져 있고, 여러 매의 종이를 이어 붙여 절첩 형식이다. 발원문은 1658년(효종 9)의 조성 발원문과 1693년(숙종 19)의 중수 발원문이고, 불사에 참여한 화원은 당시 경상도 지역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던 인물들로 현재 다수의 불상 작품이 전한다. 특이한 것은 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발원문에 기록된 화원의 불상 조각과는 전혀 다른 조선 전기의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 선암사 불상은 조선 전기에 조성된 불상이며, 발원문은 조선 후기 17세기에 조성 및 중수된 다른 불상의 것이라고 판단된다. 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 전기의 목조 불상 자료가 적은 편이고 복장 발원문의 내용이 특정 인물과 관련된 상세 기록이어서 불상 및 복장유물[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이 2008년 12월 1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90㎝이며 허리를 곧게 펴서 고개를 약간 숙인 자세로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있다, 양손은 배 위쪽으로 가슴에 가까운 위치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아미타인(阿彌陀印)을 결하였다. 신체는 짧은 목, 좁은 어깨와 완만한 어깨선, 편평한 가슴과 볼록한 배 등 전체적으로 건장한 편은 아니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부드러운 눈매와 갸름한 얼굴형이어서 온화한 인상이다. 눈썹과 눈 사이가 멀고 눈꼬리는 올라가지 않고 수평이며, 좁고 긴 코는 편평하게 조각하였다. 인중이 짧고 도톰한 입술, 턱 부위를 볼록하게 양감을 주었다.

머리와 육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지만 이마에서 정수리 방향으로 좁아지는 형태이다. 머리의 중앙에는 반달형의 중간 계주가 있고 정상에는 원통형의 정상 계주가 있다. 나발은 뭉툭하게 둥근 형태이고 모양과 크기는 일정하지 않는데, 표면에 천을 바르고 각각의 나발을 붙여서 그 위에 흑칠을 두껍게 한 상태이다.

착의법은 양어깨에 대의(大衣)를 걸치고 가슴 왼쪽으로 올라간 승각기[僧脚崎: 승기지(僧祇支)·엄액의(掩腋衣). 인도 승단에서 비구니에게 삼의(三衣) 안에 입도록 규정한 작은 옷. 직사각형으로 왼쪽 어깨에 걸쳐 비스듬히 내려뜨려 가슴을 가리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감음]와 군의를 입었다. 대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식(通肩式)으로 보이지만, 군의 아래에 배 안으로 넣은 옷자락과 뒷면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팔꿈치 안으로 들어간 옷자락 표현을 볼 때 일반적인 통견식과는 다르다. 배 앞에는 양어깨에서 내려온 좌우 옷자락이 모두 대의 안으로 들어가 있는데, 통견식의 대의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이다. 왼쪽 손목에서 내려온 옷자락은 결가부좌한 왼발 일부를 덮고 무릎 앞으로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표현하였다.

선암사 목조 불상의 제작 방법은 머리, 상반신, 양손, 하반신을 따로 조각하여 조합한 방식이며 머리의 나발은 다른 재질로 형태를 만들어 부착하였다. 불상의 바닥 부분은 송판으로 전체를 막고 중앙 복장 구멍에는 한지로 밀봉하였다.

[특징]

선암사 목조 불상은 갸름한 얼굴에 볼록한 턱과 완만한 어깨선 등 전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를 준다. 착의법에서 대의를 입은 방식이라든지, 왼팔에서 내려온 소맷자락, 그리고 가슴 아래로 보이는 승각기의 모습은 고려 후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을 보인다.

반면에 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에서 출토된 발원문 2종은 조선 후기 17세기의 것으로 불상과 복장 발원문은 상당한 시기적 차이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1658년(효종 9)의 조성 발원문은 아미타불상을 새로 조성하면서 총 89명의 시주자가 발원하였고 희장(熙藏)·보해·태징·찬인·지관·경철 등 6명의 화원이 참여하였다. 화원 명단에 처음으로 기록된 희장은 조선 후기 17세기 중반에 경상도와 전라도 에서 활동하던 승려 장인으로 범어사 대웅전 불상 및 주요 사찰에 많은 불상들이 남아 있다. 희장의 다른 불상 작품과 비교했을 때 선암사 불상에서는 그의 특징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불상은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발원문에서 특이한 점은 노즙(盧濈)이란 인물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불상 조성의 조력자로 큰 역할년을 했던 인물로 추정되며 당시 가덕진 수군첨사로 그의 주요 양력이 기술되어 있다.

35년이 지난 1693년(숙종 19)에 실시한 불상 중수에 관한 발원문에서는불사의 규모가 작아졌는데, 총 25명의 시주자와 시주 물목은 공양·모시·면금 등이다. 발원문의 마지막에는 1693년 3월 1일에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 서쪽 선암사에서 불상 중수를 마친다고 기록하고 있어, 불상의 봉안 장소가 현재의 부산 선암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수에 참여한 화원은 법한과 각총이며,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흥사(聖興寺)에 법한이 조성한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들이 남아 있지만 현재 선암사 불상과는 유사성을 찾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복장 발원문과의 상관관계를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새롭게 변화된 조선 전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며, 조선 후기의 불상 조성과 중수에 관한 불사 규모 및 화원 등을 발원문을 통해서 종합적으로 파악할수 있다는 데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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