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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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粉靑沙器印花菊花文四耳附胎壺 |
영어의미역 | Grayish-blue-powdered Celad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기명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부민동 2가 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동철 |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화문이 시문된 조선 전기 분청사기 태 항아리.
[개설]
분청사기인화국화문사이부태호(粉靑沙器印花菊花文四耳附胎壺)는 2010년 9월 20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외 항아리[외호(外壺)]는 뚜껑과 항아리로 나뉜다. 뚜껑 윗부분에는 4개의 구멍이 나 있는 보주형(寶珠形)의 꼭지가 있다. 항아리의 아가리 아래 4곳에는 작은 고리를 같은 간격으로 부착하였다. 내 항아리[내호(內壺)]도 뚜껑과 항아리로 나뉜다. 뚜껑 윗면에는 고리 2개를 십자로 교차시킨 꼭지를 만들었다. 항아리는 계란형으로 길쭉하며, 아가리 아래 네 곳에 작은 고리를 같은 간격으로 부착하였다. 외 항아리의 높이는 38.9㎝이고, 내 항아리의 높이는 27.0㎝이다.
[특징]
외 항아리의 문양은 아가리 아래와 몸통 아랫부분에 변형된 연판문(蓮瓣文)[연꽃잎모양을 도안화한 무늬]을 상감(象嵌) 하였고, 몸통 앞부분에는 국화문(菊花文)을 빈틈없이 채워 넣었다. 내 항아리의 문양은 아가리 아래에 국화문을 빽빽하게 시문(施文)하였고, 몸통에는 6줄의 선문(線文)과 파상문(波狀文)을 음각으로 처리하였다. 유색(釉色)은 전체적으로 회녹색(灰綠色)을 띠고 있으며, 태토(胎土)는 기공(氣孔)과 사립(沙粒)이 많은 편이다. 굽의 바닥에는 유약을 훑어낸 후, 모래가 섞인 내화토(耐火土)를 받쳤으며, 굽의 안쪽 바닥에는 도구를 사용하여 다진 흔적이 있다. 15세기 전반기에는 네 귀가 달려 있는 분청사기 태 항아리가 많이 생산되었고 남아 있는 작품도 많은데, 이 태 항아리는 그릇의 형태와 인화기법 등으로 보아 15세기 충청도 지역에서 생산되던 분청사기 태 항아리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분청사기로 만든 태(胎) 항아리는 주로 왕실에서 태를 담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내항아리와 외항아리로 되어 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분청사기인화국화문사이부태호는 국보 제177호 분청사기인화 국화문 태 항아리[粉靑沙器印花菊花文胎壺]와 비교해 볼 때, 태토가 좋지 못하고 문양의 시문 기술에서 다소 격이 떨어지지만 그릇 모양과 크기가 유사할 뿐만 아니라 내 항아리와 외 항아리를 다 갖추고 있는 15세기의 귀중한 분청사기 태 항아리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