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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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熊川里中里堂山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Ungcheon-ri Jungrimaeul |
이칭/별칭 | 중리 당산 할매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423 |
집필자 | 류경자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중리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웅천리 중리 당산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새벽 4시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423번지에 있는 중리 제당에서 1년에 한 번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중리 당산 할매제’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옛날 중리 마을에는 할매 제당이 있었고, 석길 마을·미동 마을에는 할배 제당이 있었다. 예전에는 할배 제당에서 당산 할배제를 먼저 지내고 중리 마을에서 당산 할매제를 지냈으나, 1970년 무렵 당산 할매제로 합쳐 지내게 되었다. 마을에서는 그 후 할배 제당을 일러 ‘거릿대 제단’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현재 제당은 남아 있지 않다. 제의에 이어 제당마저 없어지고 나자 웅천리의 중리 마을·미동 마을·석길 마을의 당산제는 완전히 중리 할매제로 통합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중리 당산은 중리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정확하게는 마을 앞 수리정(愁離亭)에서 서북쪽으로 40m 떨어진 지점이다. 제당은 건물 면적이 5.7㎡[1.7평, 앞면 256㎝, 옆면 223㎝]이며, 동동남향을 하고 있다. 슬래브 지붕에 블록으로 벽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하였으며, 외짝 여닫이 함석 문이 달려 있다. 제단은 직사각형[앞면 230㎝, 옆면 59㎝, 높이 97㎝]의 합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제단 아래에는 벽장을 만들어 제기를 넣어 두고 있다. 별도로 위패를 모시거나 산신도를 걸어 둔 것이 없다. 제당의 주변에는 소나무 네 그루가 서 있으며, 담장은 없다.
[절차]
웅천리 중리 당산제의 제관은 1월 12일 무렵 중리·미동·석길 등의 세 마을 이장이 모여 선정하였는데, 제관에 대한 보수는 따로 없었다. 2000년에는 한때 마을의 청년회에서 당산제를 지내기도 했지만, 2005년 무렵부터는 수도암의 스님이 와서 제의를 주도하므로 제관을 따로 선정하지 않는 등 당산제의 많은 부분이 변화를 겪고 있는 모습이다.
제의 날짜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음력 1월 14일 자정이었으나, 현재는 음력 정월 보름날 새벽 4시 무렵에 지낸다. 제의 경비도 2005년 조사 당시 동제답(洞祭畓)을 매매한 돈의 이자로 경비를 충당하며 약 50만 원이 소요되었으나, 현재는 마을의 기금으로 충당하는데 대략 60만 원이 든다고 한다.
제물의 종류와 진설 및 제의 절차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으며, 마을 회관에서 부녀회원들이 제물을 장만한다. 일반적으로 밥, 국, 떡, 나물, 포(脯), 과일 등을 올린다. 현재 수도암 스님이 제의를 주도한다고 해도 제물은 마을 사람들이 준비하기 때문에 산적 등 육류도 사용한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지방을 두 개 만들어 제단 위에 붙이며, 제사 후 불사른다.
[축문]
2011년 현재 수도암 스님이 불교의 경문을 읽는다.
[부대 행사]
원래 웅천리 중리 당산제를 지내고 난 다음날에는 마을 회관에서 동네 어른들이 모여 음복을 했다. 현재도 당산제가 끝나면 제물을 나누면서 마을 회의를 개최하는데, 예전처럼 음복을 하면 반드시 금기를 지키는 등의 엄격한 의미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현황]
예전에는 웅천리 중리 당산제를 끝낸 후에도 제관이 3개월 정도 금기를 지켰으나, 2000년 무렵부터는 거의 금기를 지키지 않고 있다. 2011년 현재 수도암 스님이 제의를 주도하고 이장이 혼자 제의에 참석하지만, 반드시 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제관에 대한 금기 약화나 사찰에의 제의 의뢰 등의 모습에서 급속한 현대화에 따른 제의의 축소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