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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542
한자 峨嵋洞大頭山堂山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Ami-dong Daedusan Mountain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2가 236
집필자 황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자정
신당/신체 제당|산신도|위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9년 5월 8일연표보기 - 제당 건립
의례 장소 대두산 제당 -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2가236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아미동 대두산 당산제는 음력 1월 14일 자정 무렵에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2가 236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1년에 한 번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 할배, 당산 할매, 서낭 할매 등에게 동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당산 신의 신격과 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당산제를 모셔 온 것으로 믿고 있다. 제당은 아미동 관음사 뒤편의 산기슭에 있다. 대두산에 관련된 지명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감천에서 물을 먹으려고 이곳으로 올라와 물을 먹고 돌아가려 할 때, 아미동에서 감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길이 생겨 그만 갈 수 없게 되자 죽어 머리 부분은 대두산이 되고 꼬리 부분은 고개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당은 1989년에 건립된 것으로[歲次己巳年五月初八日午時立柱上樑], 형태는 슬래브 기와 맞배지붕에 벽면은 블록과 시멘트로 마감한 구조물이다. 당사 안에는 시멘트로 만든 직사각형의 제단이 있으며, 제단 위에는 위패 판에 ‘대두산주당신위(大頭山主堂神位)’라 쓴 위패가 들어 있다. 그 외 정화수 그릇, 술잔, 향로, 촛대 등이 있다. 위패판 위에는 산신도가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 있다. 제당 안 왼쪽 벽면에는 당산 할배, 당산 할매 한복 한 벌과 남녀 어린이 한복이 각 한 벌씩 걸려 있다. 제당 주위에는 수령이 5, 60년으로 추정되는 소나무가 5그루 있는데, 이 중 제당 앞에 있는 소나무는 서낭 할매의 신체이다.

[절차]

당산제를 모시기 전 당산제를 주관할 제주를 예전에는 마을의 유지들이 모여 회의를 개최해 마을 주민 중 그해 집안에 길흉사나 부정이 없고 생기복덕이 좋은 사람으로 가려 선정하였으나, 근래에는 제주를 맡고자 하는 이가 없어 마을 통장이 주관하고 있다. 제주를 마을 주민들 중에서 선정할 때에는 선정된 제주는 부정 타지 않도록 1년 동안 남의 길흉사에 참석하지 않고 살생과 분쟁을 피하는 등 엄격한 금기 생활을 이행했으나, 통장이 제주를 맡은 후로는 금기가 축소되어 제의 3일 전부터 제의 당일까지만 금기를 행한다.

당산제에 올리는 제물의 종류와 진설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동일하다. 당산제의 제물을 구입하거나 조리할 때에는 부정 타지 않도록 구입 시 첫눈에 든 제물을 택하되 흥정을 하지 않으며, 조리할 때에는 간을 보지 않는다. 제물을 진설한 다음에는 산신제를 따로 지내지 않고 제당 안에서 당산 할배, 당산 할매 순으로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낸 후에는 제당 앞 소나무에서 간단한 제물만 진설하여 서낭 할매제를 지낸다. 제의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이 유교식 엄숙형이나, 제의 말미에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축원을 외며 소지를 올린다. 이때 소지한 재가 하늘 높이 보기 좋게 오르면 그해의 운수가 길할 것으로 여기며, 그렇지 않고 재가 아래로 뚝 떨어지면 그해 운수는 흉할 것으로 속신한다.

제의가 끝난 후에는 제물을 통장 집으로 가져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음복한다. 당산제의 제물은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어 음복 시 가정에 길흉사나 기타 부정이 있는 이는 음복하지 않는다. 당산제를 지낸 후에는 달리 부대 행사를 행하지 않는다.

[현황]

아미동에서 현재 아미동 대두산 당산제를 모시는 전통은 계승하되,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주의 경우에는 다소간의 변화가 생겼다. 마을 주민 중 깨끗한 이를 가려 제주를 선정하던 관례가 마을 통장으로 변화되었다가, 근래에는 마을 주민들이 지내지 않고 인근의 관음사의 유성업 보살이 전담하여 제를 지내고 있다. 당산제에 소요되는 경비는 마을 주민들이 추렴하여 충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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