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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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峨嵋洞堂山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Ami-dong |
이칭/별칭 | 아미동 산신당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2가 198 |
집필자 | 황경숙 |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2가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아미동 당산제는 매해 음력 1월 14일 자정에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2가 198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 할매에게 동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아미동 산신당’이라고도 한다.
아미동 당산제는 아미동 감천 고개 정상 부근에 자리 잡은 대성사(大成寺)의 보살 김귀엽이 주관하여 모셔 오고 있다. 김귀엽이 당산제를 모시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어느 해 1월 13일 밤에 얼굴이 얽은 한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절로 찾아와서 밥을 구걸하기에 없다고 하니 노파가 지팡이를 휘두르고 나가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 꿈을 꾸고 난 다음날 아미동 동장이 대성사에 찾아와 김귀엽 보살에게 당산제를 지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에 김귀엽은 전날 꿈에 나타난 노파가 당산 할매임을 알고 당산제를 모시기로 하였다 한다.
[연원 및 변천]
아미동은 옛 일본인의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이다. 이후 6·25 전쟁 후 부산으로 피난 온 이들이 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으로 와 공동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수호신을 모시고 당산제를 베풀게 되었는데,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 마을의 당산제는 6·25 전쟁 이후로부터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이후 제당은 1993년에 보수하였는데, 제당 안에 걸려 있는 「본신당 보수 취지문(本神堂補修趣旨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축후(新築後) 세구년심(歲久年深)으로 풍우(風雨)에 감내(堪耐)치 못하여 후폐(朽廢)될 직면(直面)에 봉착(逢着)함으로 본경로회(本敬老會)에서 좌시(坐視)할 수 없어 수년간(數年間) 보수사(補修事)에 고심(苦心)하든 바 당시(當時) 1,2동민(一二洞民)의 협조(協助)와 아울러 경로회장(敬老會長) 손수갑(孫守甲), 부회장(副會長) 운고(雲皐) 박길영(朴吉榮) 열성(熱誠)으로 재무(財務) 최서업(崔聖業) 외(外) 간부(幹部)로 위시(爲始)하여 본당(本堂) 유지제현(有志諸賢)게 찬조금(贊助金) 희사(喜捨)에 의거(依據)하야 보수(補修)하게 되었습니다. 본 경로회에서 고금(古今)으로 전동민(全洞民)의 협조하(協助下)에 매년(每年) 음정월 15일 향제(陰正月十五日 享祭) 중(中) 서기 1972년 4월 16일부(西紀一九七二年四月十六日付)로 부산시장(釜山市長)으로부터 문화재(文化財)로 간주(看做)됨에 따라 가일층(加一層) 경중(敬重)하여 왔습니다. 전동민은 영구보존(永久保存)하심을 바랍니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신당은 1993년에 보수하였는데, 제당 안 왼쪽 벽면에 제당을 보수하게 된 취지를 담은 「본신당보수취지문」이 걸려 있다. 제당의 형태는 기와 맞배지붕으로 벽면은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하였다. 제당 안에는 미륵바위가 모셔져 있다. 미륵바위 앞에는 시멘트로 만든 제단이 있고 제단 앞에는 향로단이 있다.
제단 위에는 시멘트로 만든 위패 2개가 있다. 오른쪽 위패에는 붉은 페인트로 ‘아미제당비신위(峨嵋祭堂妣神位)’라 쓰여 있고, 왼쪽 위패에는 ‘아미제당신위(峨嵋祭堂神位)’라 쓰여 있다. 제단 뒤 벽에는 산신도가 붙어 있다. 제단 위에는 위패 외에 정화수 그릇, 술잔, 향로 등이 놓여 있다. 제당 뒷벽 왼쪽에는 할배 옷 1벌이 걸려 있고, 오른쪽 벽에는 ‘아미산 신사 중수 방명(峨嵋山神社重修芳名)’ 현판이 두 개 걸려 있다. 한편 왼쪽 벽면에는 ‘보수공사 협조인 및 금액’의 현판, ‘아미동 산신당 보수공사 기증자 방명’ 현판 등이 걸려 있다.
제당 밖 담장에 있는 태극 문형이 그려진 여닫이 두 짝 나무문 위에는 ‘아미동 산신당(峨媚洞山神當)’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제당 주위에는 블록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제당 좌우로 벚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다.
[절차]
제를 모시기 전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주를 선발하는 것이 관례다. 예전에 이 마을에서는 당산제를 모시기에 앞서 마을 주민들이 마을 회의를 개최해 마을 주민들 중 가정에 길흉사가 없고 생기복덕이 좋은 이를 가려 제주를 선정하였으나, 근자에는 아미동에 있는 대성사에서 제의를 주관하여 모시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제주가 지키는 금기는 달리 없다.
당산제에 올리는 제물의 종류와 진설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동일하다. 당산제는 산신제와 거릿대제를 따로 모시지 않고 제당에서 당산 할배제와 당산 할매제만 지낸다. 당산제의 제의 방식 역시 유교식 엄숙형으로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동일하나 『당산경』의 축문을 외고 난 뒤 제의에 참석한 통·반장의 안녕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며 축원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릴 때에는 재가 하늘 높이 오르면 그해 운수가 길할 것으로 여긴다. 제의를 마친 뒤에는 제물의 일부를 떼어 내어 제당 밖에서 잡귀 잡신을 풀어먹인다.
[부대 행사]
당산제를 모신 뒤에는 제물을 경로당, 파출소, 동사무실로 보내 관계자들이 음복하도록 하고, 동민들이 모여 단합 대회와 놀이를 통해 친목을 다진다.
[현황]
현재 아미동 당산제는 대성사에서 전담하여 모시고 있다. 대성사를 창건한 김한순 주지가 제를 주관하였으나, 주지 스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김귀엽 보살이 제를 주관하고 있다. 당산제에 소요되는 경비는 대성사에서 부담하되, 동회에서 일부 보조해 주는 것으로 충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