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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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就明 |
영어음역 | Sim Chwimyeong |
이칭/별칭 | 심상호(沈相鎬)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규 1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초기 기독교 지도자.
[활동 사항]
심취명(沈就明)[1875~1958]은 1875년 12월 5일 심인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심상호(沈相鎬)였으나 후일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 심취명으로 개명하였다. 전통적인 양반 가문에서 출생한 심취명은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유가적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심취명이 목회자가 된 것은 그의 형의 영향이었는데, 형 심상현(沈相炫)은 부산 지방 첫 수세자(水洗者)였다. 1894년 10월 중순 경 심상현의 죽음으로 그의 부모가 신앙을 갖게 되었고, 심취명과 사촌뻘인 김씨도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김씨는 선교부가 운영하던 남자 학교 교사였다.
형 심상현이 사망한 지 약 1년 뒤인 1895년 11월에 세례를 받아 부산 지방에서 두 번째 수세자가 되었다. 세례를 받은 심취명은 형의 뒤를 이어 처음에는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봉사하였으나 후에는 일신여학교 교사로, 그리고 선교부가 주관하는 신앙 교육을 담당하였다. 부산 지방 첫 교회인 부산진교회에 출석하던 심취명은 1903년에는 장로로 택함을 받았고, 1904년에는 5월 27일에는 장로 장립을 받아 부산과 경상남도 지방 최초의 장로가 되었다. 이때 심취명의 나이는 29세였다.
장로로 일하던 중 왕길지(王吉志) 선교사의 추천을 받은 심취명은 평양의 장로교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고, 1910년 6월에 제3회로 졸업하였다. 김익두(金益斗)·김종섭·박정찬·채정민(蔡廷敏)·한득룡(韓得龍) 등이 심취명의 동료들이었다. 신학교를 졸업한 심취명은 울산병영교회 시무 장로로 봉사하다가 1912년 7월 2일 경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부산과 경상남도 지방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그 후 경상북도 영주 풍기읍교회로 부임하여 1년 여간 목회 활동을 하였고, 1913년 출신 교회인 부산진교회로 부임하여 왕길지 목사와 동사 목사로 일하였다. 이때부터 4년여 기간 동안 시무하였고, 1917년 1월 23일 이 교회를 사면하였다.
1919년에는 남해 지방의 5개 교회를 담임하면서 경상남도 지역 복음화에 매진하였다. 1920년부터 1921년까지는 경남노회장[제10대·11대]으로 봉사하였고, 1923년 3월부터는 현재 부산의 제일영도교회인 영선정교회와 항서교회 목사로 부임하였으나 9개월 만인 12월 16일 사임하였다. 1926년에는 다시 울산읍교회로 이동하여 1929년까지 일하였다. 그 후에는 개인 사정으로 목회를 중단하고 지내던 중 1958년 4월 15일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