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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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舞峰 |
영어음역 | Hwang Mubong |
이칭/별칭 | 황경락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영미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한국 무용을 일군 신무용 2세대이자 무용 교육자.
[활동 사항]
황무봉(黃舞峰)[1930~1995]은 1930년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황경락이다. 현지 발레무용연구소에서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고, 귀국 후 한영숙(韓英淑)·조택원(趙澤元)·김보람에게서 사사하였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 1954년 진주시에서 황무봉예술무용학원을 개원하여 제자들을 키워 냈다. 1957년 부산으로 이주한 이후 40년간 줄곧 부산에 머물면서 한국 춤의 텃밭을 가꾸는 데 혼신을 다하였다.
황무봉은 춤꾼으로 무려 22회의 개인 발표회를 개최하며 무대에 직접 올랐으며, 3천여 명에 이르는 많은 제자를 키워 내 그들의 성장과 성공을 지켜본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리고 창작이나 안무의 실제 교육에 있어서 신무용을 보급하고 전파하는 점 등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황무봉의 작품은 솔로 위주로 펼쳐진 신무용 1세대의 춤에 비해 군무 형식[여러 명의 무용수가 함께 추는 형식]을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작품의 규모가 커진 것이 특징이었다.
1963년에는 한국무용협회 부산지부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한국 무용계에서는 처음으로 일본 6개 도시 1개월 순회공연을 진행하였다. 황무봉은 한국 무용의 재구성과 현대화에 그 능력을 발휘하였고 한국 창작 무용의 가교 역할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1973년엔 전국 최초의 직업 무용단으로 기록된 부산시립무용단을 출범시키고 초대 안무장을 맡았다. 한국 전통 춤의 요소를 바탕으로 신무용적 감각을 가미한 창작 춤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춤 스타일을 구축하였다고 평가되는 황무봉은 1995년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1940년대에 「논개, 칠석날, 콩쥐 밭쥐」, 1950년대에 「일곱 난장이와 백설공주」, 1957년에 「신로심불」·「즉흥무」·「황혼의 장미」, 1960년에 「엄마가 저자 가신 동안」, 1962년에 「쥐의 의논」, 1965년에 「묵화」, 1969년에 「약산 마을」, 1974년에 「목련화」, 1977년에 「춘향」, 1987년에 「만가」 등을 발표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에 황무봉 사망 10주기 추모 공연이 서울과 진주에서 열렸으며, 『황무봉류 기본 춤 무보집』도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