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424
한자 國淸寺金井山城僧將印
영어의미역 The Monk Commander's Seal at Gukcheongsa Temple in Geumjeongsan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경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03년연표보기 - 국청사금정산성승장인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9월 11일연표보기 - 국청사금정산성승장인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국청사금정산성승장인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현 소장처 범어사 성보박물관 -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397지도보기
원소재지 국청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397지도보기
성격 인장|도장
재질 놋쇠
크기 6.5㎝x7.3㎝[높이]|3㎝x5.8㎝[너비]
소유자 국청사
관리자 국청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국청사(國淸寺)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승장의 도장.

[개설]

국청사는 신라 시대부터 있어 온 절이라고 전해지지만 그 내력은 알 수 없으며, 부산 금정산성(釜山金井山城) 수축 이후 사우가 중건되어 그 규모가 승당과 선당을 합쳐 100칸이 넘었다. 또 호국 지장 도량으로 임진왜란 때 전사한 부산진 첨사 정발(鄭撥),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 다대포 첨사 윤흥신(尹興信)과 승장 만홍, 정안, 성관, 관찰 등 수백 명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승병의 활동이 많았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 부산 금정산성의 수축[1703년]과 관리를 위하여 승병들의 거처가 필요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해월사(海月寺)국청사인데, 현재 가람을 유지하고 있는 절은 국청사이다. 국청사금정산성승장인(國淸寺金井山城僧將印)은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승병의 통솔과 관할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승병의 활동이 국가의 공식적인 제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승장의 발령도 조정에서 관리하였다. 국청사금정산성승장인은 2008년 9월 11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모든 관리는 품관의 서열에 따라 크기가 다른 인식(印式)을 사용하였는데, 참상관 이상 품관은 정방형 인장, 차하관이나 토관은 장방형으로 나와 있다. 국청사금정산성승장인도 토관의 예에 준해 장방형이다. 크기는 높이가 6.5x7.3㎝, 너비가 3x5.8㎝이다.

[특징]

인장 전체가 유제로, 손잡이 부분과 같이 한 틀에서 주조되었다. 예서로 ‘금정산성승장인(金井山城僧將印)’을 새겼는데, 향좌에 세로로 ‘금정산성(金井山城)’ 네 자, 향우에 ‘승장인(僧將印)’ 세 자가 새겨져 있으며, 위에 음각으로 ‘상(上)’이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국청사금정산성승장인은 부산 금정산성과 승병과의 관계, 국청사의 성격과 승장에 대한 처우에 관해 실증적인 사실을 알려 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