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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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江里古墳群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s of Cheonggang-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청강리 산43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홍보식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청강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고분군.
[위치]
청강리 고분군은 634m의 장산 동북쪽에 있는 양달산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유적의 중심을 이루는 삼국 시대 고분군은 1980년대 초 기장군 기장읍 청강리 주민이 토기 4점과 쇠도끼 4점 등의 유물을 국립경주박물관에 신고하여 학계에 알려졌다. 1997년에는 청강리 고분군이 조영된 구릉 말단부 가까이의 북쪽 끝자락에 대청초등학교 부지가 정해지면서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이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19기의 삼국 시대 고분군이 조사되었다. 2002년에는 청강리 고분군의 남쪽에 학교 부지가 선정되면서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1997년에 조사한 지역에서 남동쪽으로 120m 정도 떨어진 구릉에서 삼국 시대 및 통일 신라 시대의 고분 수십여 기가 확인되었다.
또한 부산~울산을 잇는 고속 도로 노선이 청강리 고분군의 구릉이 시작되는 서쪽 정상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게 되자, 고속 도로 건설 공사 이전에 이 일대에 대한 유적 존재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시굴 조사 결과 삼국 시대의 고분이 밀집 분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2005년 6월부터 8월까지 해발 100~130m 능선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일대에서는 모두 45기의 삼국 시대 고분이 조사되었다.
[형태]
삼국 시대의 고분은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구릉 위쪽에 주로 분포한 덧널무덤은 묘광 길이가 4m 이하의 중소형이고, 9호분은 묘광 길이가 6.6m로 대형이다. 그 중 규모가 큰 19호분은 독립된 부곽이 딸린 주·부곽식 묘형으로서 부산 복천동 고분군의 대형 무덤의 주·부곽식과 동일한 구조이다. 특히 4세기에 부산·김해 지역의 특징적 기종인 외절 구연 고배(外折口緣高杯)가 여러 기의 덧널무덤에서 출토되어 청강리 고분군을 조영한 집단이 금관가야와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릉 아래로 내려오면서 덧널무덤은 사라지고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분군의 주 구릉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의 구릉에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후반의 삼국 시대 말에서 통일신라 초기에 걸치는 35기의 고분이 조영되어 있다. 이 시기의 고분은 내부 주체가 앞트기식 돌방무덤과 굴식 돌방무덤으로, 그 중 규모가 큰 고분은 매장 주체 시설과 봉분, 호석(護石), 주구(呪具) 등을 갖추었다.
[출토 유물]
삼국 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토기이고, 신라 시대의 토기이다. 금속기로는 단조·주조의 쇠도끼·쇠화살촉·쇠낫·도자(刀子)·꺾쇠·유자 이기(有刺利器)·쇠투겁창 등이 있다. 고리 자루 큰 칼·마구(馬具)·갑주(甲胄)[갑옷과 투구] 등과 금속제, 구슬류의 장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황]
일제 강점기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잦은 도굴로 인해 원상을 가진 것은 거의 없을 정도이며,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의의와 평가]
덧널무덤이 조영된 곳보다 위쪽에는 완만한 구릉 정상부가 있어, 이 일대의 고분군은 3세기 후반부터 조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청강리 고분군의 조영은 3세기 후반부터 7세기 후반까지 약 400여 년간 지속되어, 현재 기장군 내에서 가장 존속 기간이 긴 중심 고분군이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청강리 고분군을 조영한 집단의 생활공간은 고분군으로부터 북쪽으로 7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은 3개의 구릉에서 확인되었다. 이 일대의 4개 구릉에 분묘 공간과 주거 공간, 제사 공간이 있고, 분묘와 일상 공간을 구분하였다. 생활·제사·분묘 등의 공간이 인접해 있고, 또 다량의 주거지와 주혈·고상 건물지·저장 시설 등과 대형 건물지, 목책열 등의 제사와 관련한 시설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청강리 유적과 대라리 유적을 조성한 집단의 양상은 물론 삼국 시대 기장군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할 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4개 지구의 구릉에 조영된 유구의 중심 연대가 4~5세기로, 이 시기의 복합 유적으로서 대라리 유적을 남긴 집단의 일상생활과 저장, 그리고 제사와 분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당시의 생활사 전체를 복원할 만한 최적의 모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