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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22
한자 社稷洞-
영어의미역 Daeryong Stone-coffin Tomb in Nopo-dong
이칭/별칭 사직동 석관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쇠미로 97[사직동 632]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홍보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덤
양식 돌널무덤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4년연표보기 -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수습함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4년 - 동래구 사직동 주민이 우연히 발견함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632
출토 유물 소장처 부산대학교 박물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장전동 산30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후기의 무덤.

[위치]

사직동 돌널무덤이 발견된 곳은 현재 사직동 시장 내의 상가 자리 일대로 추정되지만, 이 일대 전체가 시가지로 변모하면서 유적의 정확한 위치와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곳은 금정산의 주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급경사면을 이루다가 사직동 일대에서 야트막한 구릉이 길게 형성된 곳이다. 유적의 남쪽에는 사직천이 온천천으로 유입되는데, 지금은 복개되었다. 사직천과 온천천 사이에는 다소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선사인과 고대인이 생활하기에 좋은 자연 조건이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64년 동래구 사직동 산기슭에서 주민이 우연히 발견하였으며, 유구는 이미 거의 파괴되어 있었다.

[형태]

발견 당시 지상에 아무런 시설이 없었고, 지하에 장축이 동서인 석관이 있었다고 한다. 석관은 네 벽과 뚜껑이 각각 한 장의 판석으로 축조되었고, 석관 내의 바닥에는 작은 조약돌이 깔려 있었다. 유물은 북벽 가까이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석관의 내부인지 묘광과 석관 사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출토 유물]

유물은 간 돌검 2점과 민무늬 토기 2점 등 모두 4점이 출토되었으나, 간 돌검 1점과 소형의 민무늬 토기 1점은 현장에서 파손 분실되었다고 한다. 1964년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나머지 유물을 수습하였다. 민무늬 토기 1점은 몸통 아래가 볼록하고, 굽상 바닥이 있고, 아가리의 목 외면에 조흔상의 단사선문이 종으로 시문되어 있으며 아가리 일부가 파손되었다. 크기는 높이 22.4㎝, 아가리 직경 14.3㎝로서 민무늬 토기 옹(甕)으로는 중간 정도에 크기이다. 간 돌검은 잘 마연된 점판암제의 일단 병식이며, 심부(芯部)와 병두(柄頭)는 다소 길게 돌출되어 있다. 검신에 비해 병두의 길이가 길고, 신부 단면은 능형을 이룬다. 석검 길이는 22.8㎝이다. 이 외에도 부산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중에 사직동의 다른 고인돌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간 돌검 1점이 있다.

[현황]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완전히 사라져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석관의 구조와 출토된 유물로 보아 사직동 돌널무덤은 고인돌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토기와 간 돌검의 형태로 보아 부여 송국리 유적과 같은 시기인 청동기 시대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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