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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 후불탱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02
한자 梵魚寺羅漢殿釋迦牟尼後佛幀畵
영어의미역 Altar Portrait of Buddha at the Nahan-jeon Hall of Beomeosa Temple
이칭/별칭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 후불탱」,「범어사 나한전 석가 설법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화
작가 약효|문성|정상|종인|축연 등
서체/기법 면 바탕에 채색
소유자 범어사
관리자 범어사
제작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제작
현 소장처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원소재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나한전에 봉안된 개항기의 석가모니 후불탱화.

[개설]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 후불탱화(梵魚寺羅漢殿釋迦牟尼後佛幀畵)」는 범어사 나한전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으로 1905년에 제작되었다. 제작에는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1846~1928]의 주관 하에 보응당(普應堂) 문성(文性)이 출초(出草)를 맡고 혜암당(慧庵堂) 정상(正祥), 관허당(觀虛堂) 종인(宗仁), 축연(竺演) 등 총 16인의 화승이 참여하여 제작한 그림이다.

[형태 및 구성]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 후불탱화」의 크기는 세로 206.4㎝, 가로 266.7㎝로 세로축에 비해 가로축이 넓은 편이다. 3폭의 면을 가로로 연결하여 화폭을 만든 뒤 안료를 풀었다. 화면에는 중앙의 본존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을 포함한 네 보살, 아난(阿難)·가섭(迦葉)을 포함한 십대 제자와 사천왕을 그렸다.

[특징]

화면 향우측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수미산 중턱의 남쪽에 있는 ‘유리’라는 지방을 관장하는 천왕]은 양손을 마주잡고 석가모니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특이한 자세의 측면상으로 그렸다. 사천왕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이러한 도상은 중국 청대 소설 등 판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 밖에 화면 상단 십대 제자들 중 가섭을 포함한 몇몇 제자들은 눈썹 위 이마 쪽 머리 부분이 넓고 둥글며, 턱은 좁고 코는 펑퍼짐하여 콧구멍이 보이는 등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문성 특유의 인물 표현인 듯하다. 또한 각 존상들의 발 아래에 그림자를 표현하여 명암을 시도하는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 후불탱화」는 충청도 지역과 금강산, 그리고 경상남도 지역의 화승들이 모여 작업한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특히 주관 화승인 약효의 작화 활동 중 주목되는 시기에 조성된 불화로, 음영법과 서양화법을 응용한 화풍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근대 불화의 중심지로 알려진 계룡산파[마곡사]를 대표하는 화승이자 근대 불화 양식을 수립한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화맥이 단절된 상황에서 약효가 그린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 후불탱화」는 현대 불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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