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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의 가족 구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90
한자 三韓時代-家族構造
영어의미역 Family Structure of the Three Han State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이재현

[정의]

삼한 시대 부산 지역 사람들의 가족 구조.

[개설]

삼한 시대 부산 지역 사람들이 혈연과 결혼을 통해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최소 단위의 공동체에 대해 알아본다.

[지역 공동체의 형성]

삼한 시대의 가족 구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그 때문에 마을 유적의 발굴 결과와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에 전하는 내용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대개 강가나 해안가에서 수렵·채집 위주의 생계 경제를 유지하였다. 마을은 대개 규모가 클 경우 10∼20동이고, 작은 경우 3∼5동도 있었다. 집자리[집터]의 규모는 길이와 너비가 5∼6m인 움집 형태이다. 하나의 집자리에는 대체로 5명 내외의 단혼 가족이 거주하였고, 마을은 확대 가족이나 친족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 마을의 규모가 커지고, 집자리의 규모도 초기에는 길이 10m가 넘는 장방형이 많다. 이때에는 하나의 집자리에 복수 세대가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청동기 시대 중기 이후에는 집자리의 규모가 작아져서 신석기 시대와 비슷해진다. 다만 마을의 규모가 커져 큰 마을의 경우 집자리가 100동이 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청동기 시대에는 농업을 기반으로 지역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마을도 대소의 차이가 나타났다. 삼한 시대가 되면 일정한 지역을 영역으로 하는 국(國)이 형성되는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대국(大國)이 4,000∼5,000가(家), 소국(小國)이 600∼700가로 구성되었다. 또 국읍(國邑)을 중심으로 읍락(邑落)과 대소 촌락이 계층적인 구조를 하고 있었다.

[가족 구성]

삼한 시대의 가족 구성은 청동기 시대와 비슷하였을 것이다. 부산 지역에서 삼한∼삼국 시대의 마을 유적이 발굴된 기장군 정관읍 가동 유적의 경우, 소형은 25㎡이하, 중형은 26~47㎡, 대형은 48~70㎡, 초대형은 70㎡ 이상이다. 그중에서 삼한 시대에 해당하는 집자리의 면적은 소형 2기, 중형 3기이다.

다른 유적에서는 50㎡ 이상의 집자리도 간혹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집자리의 전체 면적 중에서 실제 생활 면적은 전체 면적의 50∼70%에 불과하므로 실제 거주 인원은 3∼7명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하나의 움집에서는 단혼 가족 단위로 생활하고, 주변에 여러 가족이 함께 살면서 세대 공동체 또는 친족 공동체를 구성하였을 것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한조에는 “무덤과 같은 초가 토실(土室)에 온 가족이 함께 사는데, 장유와 남녀의 구분이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책 변진조에는 “감옥과 흡사한 귀틀집을 짓고 살며 혼인하는 예법에 남녀의 구분이 있고, 길을 양보하는 예절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차이가 있다. 이러한 기록과 발굴 내용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하나의 움집에 단혼 가족이 함께 살다가 자식들이 결혼하면서 분가하여 이웃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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