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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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廣域市立博物館所藏印花紋土器壺 |
영어의미역 | Printed Earthenware, Collection of the Busan Metropolitan City Museu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기명류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948-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연심 |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4동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 항아리.
[형태]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인화문 토기호(釜山廣域市立博物館所藏印花紋土器壺)는 꽃 모양을 새긴 도장으로 무늬를 찍은 목 짧은 항아리[短頸壺]로, 전체적으로 청회색을 띠며 소성 상태가 양호한 도질 토기이다. 높이는 18㎝이고, 입 지름[口徑]은 11.9㎝, 굽지름[底徑]은 12.5㎝이다. 목[頸部]의 길이가 짧고, 아가리[口緣部]의 끝 부분은 요철(凹凸) 면을 가지며, 짚의 흔적이 붙어 있다. 어깨 부분은 회전 물 손질을 한 후에 1줄의 침선을 돌렸으며, 그 위에 단판의 12판 국화 모양의 인화문(印花紋)을 시문하였다. 몸체는 회전 물 손질로 표면을 정리한 후에 1줄의 침선을 돌리고, 침선을 기준으로 아랫부분에는 세로 선의 인화문을 시문하였는데 타원형의 모습이다. 대각은 굽 모양이며 아주 얕다.
[의의와 평가]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인화문 토기호는 토기 제작 기법이나 문양으로 볼 때에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임을 알 수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는 태토(胎土)나 소성이 신라 토기와 같으나 기형이나 문양에 많은 변화가 있다. 즉 기대(器臺)나 이형 토기(異形土器)가 없어지고, 굽다리 접시[高杯], 목 긴 항아리[長頸壺]의 받침이 짧아지며, 뚜껑의 꼭지가 보주(寶珠) 모양으로 변하였다. 또 입 넓은 목 긴 항아리, 납작 바닥 목 긴 병 등이 나타나며 문양에서도 종래의 기하학적 요소에서 화려한 인화문으로 변화되었다.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인화문 토기호는 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영태 2년명 납석제 사리호와 함께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유물이다. 영태 2년명 납석제 사리호는 표면에 음각된 명문을 통해 정확한 제작 연도가 766년[영태 2년, 신라 혜공왕 2]이라는 것이 밝혀져 있다. 또한 영태 2년명 납석제 사리호는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 지리산 남쪽 해발 900m에 위치했던 폐사지인 보선암 터에 있던 석조 비로자나불 대좌의 중대석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인화문 토기호의 제작 시점을 8세기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