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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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雄 |
영어음역 | Heo Ung |
이칭/별칭 | 눈뫼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2가 4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윤정 |
[정의]
부산 출신의 국어학자이자 국어 운동가.
[가계]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눈뫼. 아버지는 허수이고, 어머니는 윤영순이다. 부인은 백금석이다.
[활동 사항]
허웅(許雄)[1918~2004]은 1932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 3학년 때 최현배(崔鉉培)의 『중등 조선말본』을 읽고 감명을 받아 「우리말본」을 공부하였다. 이를 계기로 1938년 최현배가 재직하고 있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최현배가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체포되자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15세기 국어를 공부하였다. 1945년 광복 직후 김해에 한글 강습소를 열었으며, 이어서 광신상업고등학교, 한성고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47년 부산대학교로 옮겨 정병욱, 김정한(金廷漢)과 국문학과를 만들어 1954년까지 교수로 재직하였다. 6·25 전쟁 때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국어국문학회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이후 한글 전용론과 국어·한문 혼용론이 대립하면서 갈라섰다.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2004년까지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를 지냈다. 부산에서는 1968~1975년 동아대학교 초빙 교수, 1984~1989년 동아대학교 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부산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 이후 부산·경상남도 지역의 국어학 연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2004년 1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허웅은 34년간 한글학회 이사장을 지내면서 한글 전용론, 한글날 공휴일 폐지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등 국어 문화 진흥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학문적으로는 중세 국어에서 현대 국어에 이르기까지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남겼다. 국내 최초로 음운학 체계를 세운 『주해 용비어천가』[1955]를 비롯해, 『국어 음운론』[1958], 『언어학 개론』[1963], 『중세 국어 연구』[1963], 『우리 옛말본』[1975], 『용비어천가』[1977], 『국어학-우리말의 오늘·어제』[1983], 『국어 때매김법의 변천사』[1987], 『16세기 우리 옛말본』[1989],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1995], 『20세기 우리말의 통어론』[1999] 등이 있다.
[묘소]
허웅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번지 모란 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외솔상[1973], 국민 훈장 모란장[1984], 성곡 학술 문화상[1986], 세종 문화상[1990], 주시경 학술상[1993], 세종성왕 대상[1998],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2000), 연세 문인상(2002)을 수상하였고, 국민 훈장 무궁화장(2004)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