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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679
한자 朴元杓
영어음역 Bak Wonpyo
이칭/별칭 길포(吉浦),향토 사전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3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강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융인|향토사가
성별
본관 밀양
대표관직|경력 부산향토문화연구회 회장
출생 시기/일시 1910년 8월 25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6년 4월 - 부산공립보통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31년 3월 - 부산제2상업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경상합동은행 부산지점에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한성은행 부산북지점장 대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2년 10월 - 조흥은행 북부산지점장 대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5년 10월 - 부산은행집회소 사무 국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5년 11월 - 『부산 매일 신문』 전무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부산경남체육회 감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7년 8월 - 고려흥신소(주) 개업
활동 시기/일시 1948년 7월 - 부산경제구락부 전무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1년 10월 - 대한적십자사 부산경남지사 창설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국제라이온스협회 부산지부 창설
활동 시기/일시 1964년 - 『부산 금융계의 회고』 발간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국제라이온스협회 본부 공로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66년 - 국제라이온스협회 부산지부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67년 7월 -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309지구 부총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62년 3월 - 재건국민운동 부산시 위원회 향토 개발 분과 위원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68년 - 부산향토문화연구회 조직, 부산시 문화재 위원에 임명, 『부산 금융사』 발간
활동 시기/일시 1969년 - 눌원 문화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86년 2월 24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9년 - 부산시 문화상 추서
출생지 영주동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30
거주|이주지 서대신동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화인아파트 405호
수학|강학지 부산공립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1동 580지도보기
수학|강학지 부산제2상업학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503-15지도보기
활동지 남원 - 전라남도 남원시
활동지 경상합동은행 부산지점 - 부산광역시
활동지 부산매일신문사 - 부산광역시지도보기
활동지 부산은행집회소 - 부산광역시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금융인 겸 향토사가.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박연익(朴淵益)이고, 어머니는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활동 사항]

박원표(朴元杓)[1910~1986]는 1910년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 4월 부산공립보통학교[현 봉래초등학교] 졸업, 1931년 3월 부산제2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전라남도 남원의 금융 조합에 입사하였다. 1937년 경상합동은행 부산지점으로 옮긴 뒤 1938년 한성은행 부산북지점장 대리, 1942년 조흥은행 부산북지점장 대리를 거쳐 1945년 10월 사단법인 부산은행집회소 사무국장이 되었다. 그해 11월부터 1년간 『부산 매일 신문』 전무를 겸하였고, 10년간 부산경남체육회 감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1951년 대한적십자사 부산경남지사를 설립하여 재무를 담당하였다. 1960년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부산지부를 설립, 총무 겸 재무 담당자로 활동하였다. 박원표의 노력에 힘입어 마산, 북부산, 통영, 남부산 등에 국제라이온스협회 지부가 생겨났다. 그 공로로 1966년 국제라이온스협회 부산지부장, 이듬해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309지구 부총재에 임명되었다. 부산은행집회소 사무 국장 재임 시절부터 부산 향토사 연구와 자료 수집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박원표는 1962년 재건국민운동 부산시 위원회 향토 개발 분과 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부산 향토사 연구를 시작하였다. 부산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박원표는 “일본이 국권을 강탈한 1910년에 태어난 부산 토박이로서 그간 보고 겪은 우리 민족의 비애와 부산의 옛 모습을 기록하여 식어 가는 향토애를 데워 주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1964년 첫 번째 저서 『부산 금융계의 회고』를 출간하였다. 금융계에 처음 몸담은 1931년부터 써 온 일기를 토대로 광복 전후 금융계 및 사회의 변천상을 소개한 글이다. 부산 금융계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책을 낸 이유였다고 한다. 이후 향토사 연구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박원표는 문헌을 뒤져 사료를 찾아내기보다는 시대를 증언해 줄 사람을 만나 육성을 채록하고, 사라져 가는 유적을 필름에 담아 내는, 현장감 있는 사료를 수집하였다. 그래서 연구 대상도 전설, 민요에서부터 인물, 역사, 각종 비화, 유적지, 음식, 풍속, 음악, 기관 및 단체까지 범위가 무척 넓었다. 『국제 신문』『부산 일보』에 「흘러간 부산 사람들」, 「부산 백화(百話)」, 「부산을 울렸던 일본인들」, 「부산의 편편상」을 연재하여 6·25 전쟁 이후 뜨내기들의 도시처럼 되어 버린 부산에 대한 애향심을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부산 지역사 연구 기관이나 관련 단체가 전무한 시절인 1968년, 박원표는 전문적인 향토사 연구를 위해 언론계 및 학계 인사 8명과 부산향토문화연구회를 조직하여 매년 『향토 문화』를 발간하는 등 부산 향토사 연구의 개척자 역할을 구체화하였다. 동평현 성지(東平縣城址)와 수영 성지(水營城址)를 측량해 규모를 밝혀냈으며, 낡아서 허물어져 가는 다대진 동헌몰운대로 이전, 복원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활동들은 『향토 문화』에 자세히 소개하였다. 1970년 금융계에서 은퇴한 후 더욱 더 향토사 연구에 매진하였다. 중앙 중심의 역사 서술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에 ‘부산’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향토사 연구의 초석을 다졌던 박원표는 평생 모은 향토사 자료를 부산상공회의소 자료실과 경성대학교 향토문화연구소에 기증하고 1986년 2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부산 금융계의 회고』[1964], 『부산의 고금』[1965], 『개항 90년』[1966], 『부산 금융사』[1968], 『부산 변천사』[1970] 등 부산의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썼다.

[상훈과 추모]

국제라이온스협회 본부 공로상[1965]과 눌원 문화상[1969]을 수상하였고, 1989년 부산시 문화상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6.10 수정 문화재 지정 명칭 변경->다대포 객사->다대진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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