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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사 지장시왕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518
한자 福泉寺地藏十王圖
영어의미역 Painting of Ksitigarbha Bodhisattva and Ten Underworld Kings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영도구 산정길 41[신선동 3가 산6-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 경기도 과천 관악산의 관음사에서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2월 27일연표보기 - 복천사 지장시왕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복천사 지장시왕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장처 복천사 - 부산광역시 영도구 산정길 41[신선동 3가 산6-2]지도보기
원소재지 관음사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519-3
성격 불화
소유자 복천사
관리자 복천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 3가 복천사에 봉안된 개항기의 지장시왕도.

[개설]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는 석가모니불의 부탁을 받고 석가모니불이 입멸(入滅)한 후부터 미륵보살이 출현할 때까지 육도(六道)의 중생을 교화한다는 지장보살과 명부(冥府)의 판관(判官)인 시왕(十王)을 함께 그린 불화이다. 지장보살은 중생이 죽은 뒤 명부 세계에서 죄와 고통으로부터 구해 주는 보살이고, 시왕은 그동안 지은 죄악에 대해 심판하는 왕이다. 복천사 지장시왕도(福泉寺地藏十王圖)는 경기도 과천[지금의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의 관음사에서 제작된 뒤 부산의 복천사로 옮겨와 봉안되었는데, 화기(畵記)를 통해 1892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12월 27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복천사 지장시왕도의 화면 중앙에는 지장보살이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대좌 앞쪽에는 선악 동자가 금색 원광을 배경으로 피어오른 연꽃을 밟고 서 있다. 그 좌우에는 도명 존자와 무독 귀왕이 시립하고, 옆쪽과 후열에는 시왕이 좌우 5위씩 배치되어 있다. 시왕의 뒤쪽에는 판관·사자·옥졸·시녀 등의 권속이 좌우 대칭으로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인 지장보살은 머리가 크고 어깨가 넓으나 무릎 너비는 좁은 편이다. 오른손을 가슴 위로 치켜 올렸고, 투명 보주를 든 왼손은 배 앞에 두었다. 민머리 위에 쓴 두건은 어깨까지 덮고 있으며, 정수리 끝에서 백색 투명 방광이 좌우로 뻗어나가 있다. 지장보살이 앉아 있는 연화좌는 옅고 짙은 군청색으로 겹겹의 연꽃잎으로 표현했으며, 원형 두광은 녹색을 바르고 가장자리에 백색·주색·군청색의 원형 띠를 둘렀다. 원형 신광은 녹색·주색·군청색·백색의 파상문을 그려 넣고 가장자리는 두광과 동일하게 처리하였다.

도명 존자와 무독 귀왕은 측면관이기는 하지만 얼굴 표현이 본존과 비슷하며 도명 존자는 민머리형에 청색 장삼과 주색 가사를 걸쳤다. 무독 귀왕은 붉은색 원류관을 쓰고 붉은색 포를 걸치고 있다. 시왕상은 일월관 혹은 원류관을 쓰고 양손으로 홀을 받쳐 들거나 합장을 하고 있다. 화면의 상단부에 위치한 우두 귀졸과 마두 귀졸의 육신부는 백색을 펴 바르고 육신 선을 따라 먹을 옅게 펴 발라 음영을 주었다. 판관이 쓴 관모의 윤곽에 돋을 기법으로 녹색 안료를 도드라지게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하단 선악 동자의 육신부와 육신선 표현은 도명 존자와 동일하다. 붉은색과 녹색의 뭉게구름으로 화면의 여백과 인물 간의 구획을 표현하였다.

[특징]

복천사 지장시왕도는 전체적으로 붉은색, 녹색, 파란색을 주조 색으로 사용하여 화면을 채색하였다. 인물들의 육신부에 음영을 표현하거나 돋을 기법으로 판관의 관모 윤곽선을 표현하는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복천사 지장시왕도는 화기를 통해 1892년에 경기도 과천 관음사에서 제작되었음이 밝혀졌으나, 이후 어떤 연유로 복천사에 전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부분적인 손상이 확인되나, 본지의 크기가 2m에 이르는 비교적 큰 작품이고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조선 후기 지장시왕도 도상 연구 및 화승 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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