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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493
한자 蔣英實
영어음역 Jang Yeongsil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종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인
성별
본관 아산
대표관직 대호군
활동 시기/일시 1421년 - 명나라에 파견
활동 시기/일시 1423년 - 상의원 별좌에 임명, 청동 물시계 제작
활동 시기/일시 1432년 - 간의대 제작 감독
활동 시기/일시 1433년 - 자격루 제작, 호군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34년 - 갑인자 제작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438년 - 옥루 제작, 대호군, 경상도 채방 별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42년 - 승여 제작 감독, 의금부에 투옥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장영실 과학 동산 개관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7월 - 장영실 과학관 개관
출생지 동래 - 부산광역시
묘소|단소 장영실 묘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장영실 과학관 아산 환경 과학 공원 - 충청남도 아산시 배미동
장영실 과학 동산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1-2

[정의]

조선 전기 부산 동래 출신의 과학 기술자.

[가계]

장영실(蔣英實)의 출신에 대해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아버지가 원의 소항주(蘇杭州) 사람이고, 어머니는 기생[官妓]이며 영실은 동래현의 관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아산 장씨 족보』에는 아버지가 고려 말 정3품 전서(典書)를 지낸 장성휘(蔣成暉)로 되어 있다.

[활동사항]

장영실은 조선을 대표하는 과학 기술자이다. 출생 시기는 조선 초기 태조(太祖)에서 태종(太宗) 초반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의 기록으로 유추해 볼 때 동래현의 관노 시절부터 물품을 만들어 내는 특출난 재능을 발휘하였고, 이러한 재능이 중앙 조정에까지 알려져 임금에게 발탁되는 기회를 잡았다. 장영실태종세종(世宗)의 총애를 받아 노비 신분을 벗어나 관인이 될 수 있었는데, 면천(免賤) 시기는 세종 대 초반으로 보인다. 세종의 특별한 배려로 상의원 별좌에 임명된 이후 무관직인 정5품 사직(司直)이 되었고, 1433년(세종 15) 호군[정4품], 1438년(세종 20) 대호군[종3품]에 임명되었다.

장영실은 1421년(세종 3) 명나라에 파견되어 중국의 앞선 과학 기술 자료를 접하였는데, 이 경험은 새로운 과학 기기를 발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영실은 1422년(세종 4) 천문 기기를 제작하라는 어명을 받고 1423년 ‘경점(更點)의 기(器)’라고 이야기되는 ‘청동 물시계’를 제작하였다. 1433년(세종 15)에는 김빈(金鑌)과 함께 새로운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청동제 자동 물시계를 만든 지 꼭 10년 만이다. 해시계의 단점을 보완한 자동 물시계는 경복궁의 경회루 남쪽 보루각에 설치되어 1434년(세종 16) 7월 1일부터 조선의 공식 표준 시계로 사용되었다. 이로써 조선은 정밀 기계 장치를 갖춘 자동 표준 시계를 갖게 되었다.

1438년(세종 20) 1월 임금의 시계, 즉 천상 시계인 옥루(玉漏)를 만들었다. 세종은 특별히 경복궁 천추전 서쪽 왕의 침실 옆에 흠경각을 지어 옥루를 설치하였다. 흠경각에는 자동 시계의 배경으로 농촌의 4계절을 그린 화폭을 세우고, 선녀가 방울을 들고 나타나는 모습, 사람·동물·나무 들을 나무로 조각하여 자연을 재현하는 등 여러 가지 인형이 나타나고 사라지게 하여 시계와 조화를 이루었다. 옥루는 장영실이 임금의 배려에 대한 보은으로 제작한 시계였다.

장영실은 금속 활자의 주조에도 참여하였다. 조선 초기의 금속 활자는 계미자(癸未字)[1403]와 경자자(庚子字)[1420] 등이 있었지만 미흡한 점이 많았다. 이에 세종장영실을 포함한 여러 기술자에게 새로운 활자 제작을 명하였고, 그 결과물이 갑인자(甲寅字)이다. 갑인자는 20여만 개의 활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루에 40여 장을 인쇄할 수 있었다. 글자체가 바르고 깨끗하며, 작업도 두 배나 쉬워 갑인자로 인쇄한 책들은 조선 초기 발간된 서적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쇄물로 인정받고 있다. 수준 높은 금속 활자인 갑인자 주조에 참여함으로써 장영실의 신분도 한층 탄탄해졌다.

장영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 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懸珠日晷)와 천평일구(天平日晷), 지남침 없이 남북의 방향이 자동으로 맞춰지는 정남일구(定南日晷), 밤낮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등의 천문 기기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장영실은 금속 제련 분야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1432년 강경순이라는 사람이 청옥을 구해 진상하자, 세종장영실을 보내 청옥을 채굴하도록 하고, 다른 사람은 채굴을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 김새가 돌맹이를 제련하여 금과 은을 만들 수 있다고 하자 장영실에게 그 기술을 배우도록 하였다. 장영실은 1438년(세종 20) 경상도 채방 별감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장영실이 금속 제련 전문가로도 활동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42년(세종 24) 장영실의 감독으로 제작된 승여(乘輿)[임금이 타는 수레]가 부서져 세종이 다칠 뻔한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장영실은 불경죄로 의금부에 투옥되어 장형을 받은 뒤 파면되었다. 그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묘소]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아산 장씨 시조 장서의 묘 아래에 장영실의 가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장영실의 과학 활동을 널리 알리고, 국민 생활의 과학화를 목표로 2000년 과학선현 장영실선생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졌다. 이 단체에서는 장영실 과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배미동 아산 환경 과학 공원 내에 장영실 과학관이 있다. 부산에서는 부산과학고등학교의 전신인 장영실과학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동래읍성 북문 옆에 장영실 과학 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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