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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474
한자 金應潤
영어음역 Gim Eungyun
이칭/별칭 소형 영화의 대부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예술인
성별
대표경력 김응윤프로덕션 대표
출생 시기/일시 1930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72년 - 부산소형영화제작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83년 - 부산비디오학원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84년 5월 - 「동아대학교 개교 37년사」기록 영화 제작
활동 시기/일시 1984년 5월 - 부산비디오영상회 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90년 8월 - ‘초보자를 위한 비디오 교실’ 강좌 개최
몰년 시기/일시 2000년 3월 16일연표보기 - 사망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활동지 부산소형영화동호회 - 부산광역시
활동지 부산8㎜영화 - 부산광역시
활동지 부산소형영화제작소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214-7지도보기
활동지 부산비디오학원 - 부산광역시
활동지 부산비디오영상회 - 부산광역시

[정의]

부산 지역에서 8㎜ 영화 제작의 전성시대를 주도한 영화인.

[활동 사항]

김응윤(金應潤)[1930~2000]의 성장 과정과 초기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40대에 이른 1970년대부터 알려져 있다. 이 무렵 부산에서는 아마추어 영화 동호인들의 8㎜ 소형 영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김응윤은 이런 움직임에 앞장서서 선구적으로 소형 영화 활동을 이끌어, 소형 영화 제작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즉 전국 규모의 촬영 대회를 개최하고, 영화계의 유명 인사들을 참여시키며 소형 영화의 붐을 조성하였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였으며, 부산소형영화동호회·부산8㎜영화 등의 동호회 활동을 통해 ‘8㎜ 영화 강좌’, ‘8㎜ 교실’, ‘초보자를 위한 비디오 교실’ 등의 강좌를 개최하고, 『소형 영화』·『부산 8㎜ 영화』 등의 회지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부산비디오영상회를 설립하여 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72년에 한국 최초로 부산소형영화제작소를 설립하였다. 1983년 명칭을 김응윤프로덕션으로 변경하고, 부설 기관으로 부산비디오학원을 개원하여 수백 명의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런 활동은 죽음을 맞을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그 결과 ‘소형 영화의 대부’라는 별칭이 붙기도 하였다.

김응윤은 평생 카메라를 메던 왼쪽 어깨 힘줄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은 적이 있으며, 그 후로 부작용이 생겨 2000년 3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모은 카메라와 촬영한 8㎜ 테이프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 기록 영화 「동아대학교 개교 37년사」[1984]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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