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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457
한자 萊城遺蹟
영어의미역 Remains of Nae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73[복천동 72]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하인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주거지 및 유물 산포지
양식 수혈 주거
소유자 동래교육청
관리자 부산광역시청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9년 11월 25일연표보기 - 부산직할시립박물관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9년 12월 24일연표보기 - 부산직할시립박물관 발굴 조사 마침
훼손 시기/일시 1990년 10월 - 내성 유적지에 동래교육청 건물 신축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72
출토 유물 소장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로 210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청동기 후기 및 삼국 시대의 유적.

[개설]

내성 유적은 1989년 10월경에 내성초등학교 뒤쪽 부지에 동래교육청의 청사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삼국 시대의 토기가 출토되어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에 부산직할시립박물관에서 1989년 11월 25일부터 1989년 12월 24일까지 긴급 발굴 조사를 하였다. 조사 결과 내성 유적은 청동기 후기의 주거지와 삼국 시대의 분묘가 복합된 유적이며, 기원전 2세기를 전후하여 5세기 초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내성 유적에서 조사된 유구는 청동기의 수혈 주거지 2동, 삼국 시대의 널무덤[토광 목관묘] 7기, 움무덤[토광묘] 2기, 독무덤[옹관묘] 2기 등 총 13기이다. 이들 유구는 대부분 동래교육청 청사를 신축할 때 파괴되어 유존 상태는 일부 고분을 제외하고는 매우 불량한 편이고, 특히 주거지는 폐기된 후 그 위에 고분이 축조됨에 따라 상당히 파괴되어 원상태를 잃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와 일본 야요이식[彌生式] 토기, 철기 및 삼국 시대의 도질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위치]

내성 유적은 국가 사적 제273호로 지정된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 입지하는 능선의 남동 사면 아래쪽에 위치하며, 내성초등학교 뒤쪽에 신축된 동래교육청이 자리한 곳에 있다.

[형태]

내성 유적에서 발굴된 주거지의 구조는 유존 상태가 불량해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나, 잔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1호 주거지를 통해 볼 때 방형의 수혈 주거로 판단된다. 1호 주거지의 잔존 규모는 450㎝×354㎝×46㎝ 정도이다. 내부에서는 1개소의 노지와 2개의 주혈만 확인되었고, 그 밖에 다른 시설물 등은 검출되지 않았다. 노지는 1호 주거지에서만 확인되었는데, 주거지의 북쪽 벽면에 매우 근접하여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1호 및 2호 주거지에서는 다량의 목탄들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조각들이라서 목재의 형태라든가 주거의 구조를 확인할 만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목탄의 노출 상태로 보아 내성 주거지는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거의가 일본 야요이식 토기이며, 민무늬 토기는 4점에 불과하다. 이 밖에 1호 주거지에서 불명 철기, 철편, 방추차, 고석이 각 1점씩 출토되었다. 내성 유적에서 출토된 야요이식 토기는 1호 주거지 내부와 퇴적층에서 출토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분 주위의 청동기 시대 문화층에서 검출되었다.

야요이식 토기의 형식은 대부분 단면 역 L자 상의 평탄 구연을 갖는 일본 야요이 시대 중기 초의 조노코시식[城ノ越式]에 해당되며, 수구(須玖) Ⅰ식도 포함되어 있다. 기종은 호형과 옹형 두 종류뿐이며, 호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민무늬 토기의 형태는 단면 삼각형 점토대 토기와 단면 원형 점토대 토기이다. 이들 민무늬 토기는 유구 내부에서 출토된 것이 아니라서 주거지 및 야요이식 토기와의 공반 관계 여부는 불확실하며, 시기는 청동기 후기 전반[기원전 200년 전후]으로 추정된다.

[현황]

내성 유적은 동래교육청 신축으로 소멸되었으나, 주변 지역에는 훼손되지 않은 주거지와 고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내성 유적은 공사 범위에 한정해서 조사가 이루어져 유적의 전체 규모를 알 수 없으나, 주거지와 고분의 분포 및 유물의 출토 양상을 고려해 볼 때 이 일대에는 많은 수의 주거지와 고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 유적에서 출토된 다량의 일본 야요이식 토기는 청동기 후기의 한·일 관계와 당시 부산 지역 대외 교류의 실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리고 삼국 시대의 고분은 인접한 부산 복천동 고분군과 위계 관계를 이해하고 고대 부산 지역의 고분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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