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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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憲宗嘉禮陳賀圖屛風(1982) |
영어의미역 | Drawing of King Heonjong’s Marital Ceremony |
이칭/별칭 | 『헌종가례도병』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부민동 2가 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숙경 |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1844년 헌종과 효정 왕후(孝定皇后)의 혼인 모습을 그린 병풍 그림.
[개설]
헌종가례진하도 병풍(憲宗嘉禮陳賀圖 屛風)은 조선의 24대 국왕인 헌종이 1843년 효현 왕후(孝顯王后)가 병으로 죽자 이듬해인 1844년 익풍 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 홍씨[효정 왕후]를 계비(繼妃)로 맞아들여 창덕궁 인정전에서 거행한 혼례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도화서 화원이 비단 바탕에 당채(唐彩)를 사용하여 그린 8폭 병풍이다. 헌종가례진하도 병풍(1982)은 조선 후기 궁중 혼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이와 비슷한 것으로 창덕궁 소장의 두루마리로 된 「가례반차도권(嘉禮班次圖券)」이 있다. 헌종가례진하도 병풍(1982)은 1982년 2월 26일 보물 제733-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헌종가례진하도 병풍(1982)은 크기가 가로 15.7㎝, 세로 51.5㎝인 견본 채색의 8폭 병풍이다. 헌종가례진하도 병풍(1982)은 건물을 왼쪽에서 사선으로 부감하여 평행 사선 구도의 시각 구성법으로 표현하였다. 제2첩에서 제7첩에 걸친 시각의 범위는 북쪽의 인정전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진선문(進善門)과 인정문, 서쪽으로는 제7첩에 일부분이 그려진 이문원(摛文院)과 하단 모서리에 그려진 금호문(金虎門), 동쪽으로는 선정전(宣政殿)과 희정당(熙政堂)을 지나 창경궁과의 경계 부근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병풍의 제1폭에는 예문 제학 조병구(趙秉龜)가 행서체로 쓴 하례 교문(賀禮敎文)이 있고, 제8폭에는 선전관 25명의 관직과 성명을 석차순(席次順)으로 적은 선전관청(宣傳官廳) 좌목이 있다. 제2, 3, 6, 7의 4폭에는 창덕궁 뒤쪽의 산과 수목들 사이에 여러 전각들이 산수화같이 그려졌다. 예식의 광경은 제5폭의 인정전을 중심으로 좌우로 제4, 6폭에까지 미치고 있다. 옥좌(玉座)의 주변을 비롯해 단상(檀上) 위에 가례를 집전하는 시관(侍官)과 단상 아래에서 하례하는 문무백관, 그 주위에 의장을 갖춘 시위 군사 등 총 300여 명이 넘는 인물을 화려하고 세밀한 필치로 그렸다.
헌종가례진하도 병풍(1982)은 문무백관이 집결한 가운데, 왕과 국체를 상징하는 의장이 전부 동원되는 진하 장면이 위엄 있는 궁궐과 함께 화려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한편 8폭의 선전관청 좌목을 볼 때 헌종가례진하도 병풍(1982)은 궁중에서 보관한 것이 아니라 선전관청의 관원들이 가례에 참석한 것을 기념하여 화원들의 손을 빌려 별본(別本)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궁중의 의식을 그린 의궤도는 기록화이므로 도식적인 묘사가 될 수밖에 없으나 헌종가례진하도 병풍(1982)은 비교적 사실과 회화적인 표현에 충실한 부분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헌종가례진하도 병풍(1982)을 통해 조선 후기 궁중 혼례의 모습을 알 수 있어 사료로서 귀중한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