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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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宜寧菩提寺址金銅如來立像 |
영어의미역 | Gilt-bronze Standing Statue of Buddha at Borisa Temple Site in Uiryeong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부민동 2가 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지현 |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동조 도금 불상.
[개설]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宜寧菩提寺址金銅如來立像)은 1948년 5월 경상남도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도굴산에 위치한 의령 보리사지(宜寧菩提寺址)[경상남도 기념물 제190호]에서 출토되었다. 광배(光背)는 결실되었지만 불상과 대좌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1981년 당시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에 위치하였던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은 2009년 5월 19일에 서구 부민동의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로 이전하여 개관하였고, 이에 따라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도 다시 옮겨져 보관되었다.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은 1982년 2월 26일에 보물 제73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은 대좌 위에 정면 직립한 불상으로 전체 높이는 26㎝이다. 어깨 너비는 5㎝이며, 대좌 받침과 상대·중대·하대로 구성된 3단의 대좌 높이는 8㎝, 대좌 지름은 8.5㎝이다. 네모진 얼굴에 크고 높은 육계(肉髻)를 가졌는데, 머리는 원래 나발(螺髮)이나 마모되어 소발(素髮)처럼 보이며 육계의 모양은 원추형으로 높게 솟아 있다.
좁은 이마에는 백호(白毫) 자국이 남아 있으며, 덧댄 눈썹과 반쯤 감은 눈은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살이 붙은 턱은 풍만하지만 탄력이 없으며, 목은 짧아 삼도(三道)의 표현이 용이하지 않다. 수인(手印)의 경우 오른손은 허리춤에 두고 아래로, 왼손은 허리춤 위에 두고 손의 방향을 위로 향하고 있다. 양손 모두 엄지와 네 손가락의 끝 부분이 다소 파손되어 명확하지 않으나 시무외 여원인(施無畏與願印) 혹은 설법인(說法印)으로 추정된다.
법의(法衣)는 양 어깨를 감싸는 통견(通肩)을 착의하였다. 배 부분에서 ‘U’ 자형으로 깊이 파였으며, 다리 아래까지 반원형의 주름을 이루고 있다. 반원형의 주름은 두 줄을 한 조로 6단으로 선각하였으며, 접힌 대의 아랫단의 모습은 간략화되어 마치 문양처럼 보인다. 대의 아래로 보이는 군의(裙衣)는 세로로 주름을 이루며 발목까지 덮고 있다.
넓게 파인 대의 사이로 드러난 사선의 승각기(僧脚崎) 끝단은 선각의 화문(花紋)으로 장식하고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신체 뒷면은 상을 절반으로 자른 듯 처리하여 편불의 모습을 띠고 있다. 대좌는 팔각의 대좌 받침과 3단의 연화 대좌로 구성되어 있다. 3단의 연화 대좌는 앙련(仰蓮)의 상대, 원통형의 중대, 복련(伏蓮)의 하대로 이루어졌으며, 대좌 받침 8면에는 커다란 안상을 맞새김하였다.
[특징]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의 대좌는 팔각의 대좌 받침과 3단의 연화 대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8세기 통일 신라 시대에 그 전형이 확립되어 지속적으로 유행한 대좌 형식이다. 하지만 불상에 비해 높이가 높아서 균형을 잃은 듯하며, 앙련과 복련이 매우 간략하게 표현되어 마치 원형처럼 보인다.
대좌에 나타난 간략화된 양식은 불상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8세기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풍부한 양감을 잃고 편평하고 딱딱한 인상을 주는데, 눈썹과 눈, 옷 주름 등 불상 전면에 표현된 선각 기법이 이를 더욱 부각시킨다. 이러한 특징은 통일 신라 시대 9세기 불상에서 나타나는 양식으로 금동불 이외 9세기 마애불에서도 찾을 수 있다. 더불어 배면에서 보이는 편불과 같이 처리한 기법은 통일 신라 시대 금동불의 주조 기법 중 늦은 시기에 등장한다. 전체적인 양식과 조각 수법, 그리고 주조 기법 등을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통일 신라 시대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의령 보리사지 금동여래입상은 광배는 비록 결실되었지만 불상과 대좌, 그리고 도금의 상태가 잘 남아 있는 작품이다. 불상은 신체 각부의 균형이 비교적 아름다운 것에 반해 양감이 떨어져 평면적이나, 대좌는 극히 높고 입체적이어서 불상과의 상호 조화를 이루는 가작이라 할 수 있다. 조각 수법과 양식 및 주조 기법 등을 통해 볼 때, 통일 신라 시대 9세기에 조성된 금동불의 말기적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