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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운당 진희 대사 영정」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377
한자 友雲堂眞熙大師影幀
영어의미역 Portrait of the Buddhist Great Master
이칭/별칭 「우운당 진희 대선사 진영」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화
서체/기법 견본 채색
소유자 범어사
관리자 범어사 성보박물관
현 소장처 범어사 성보박물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원소재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출토|발견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고승 진희(眞熙)의 영정.

[개설]

고승 진영(高僧眞影)은 덕 높은 승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우운당(友雲堂) 진희는 17세기 중반경 통도사 주지로 부임하여 많은 불사를 추진하였는데, 통도사 대웅전[국보 제290호, 1642~1644]을 중창하였으며, 1660년에는 산내 암자인 취운암을 창건하였다. 또 울산 천성산 운흥사와 협력하여 경전과 기록들을 목판에 새기는 경판 불사를 주도하였다. 1634년에는 『천성산 운흥사 사적(千聖山雲興寺事蹟)』을 직접 쓰기도 하였으며, 1675년에 개판한 목판본 『양주 통도사 석가여래 사리기(梁州通度寺釋迦如來舍利記)』에는 산중 대덕으로 이름이 보이지만 이후 입적한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그의 부도와 진영이 통도사와 범어사, 청도 용천사에 남아 있다.

[형태 및 구성]

「우운당 진희 대사 영정(友雲堂眞熙大師影幀)」의 크기는 세로 124㎝, 가로 92㎝이며 화면 상단 향좌측에 ‘우운당 진희 대선사지진영(友雲堂眞熙大禪師之眞影)’이라는 묵서 화제를 밝히고 있다. 화면은 벽면과 바닥이 구분된 2단 구도로, 상단 배경은 단색에 연엽문이 장식되어 있으며 하단은 화문석으로 나타내었다. 진희는 약간 오른쪽을 향한 자세로 바닥에 가부좌로 앉아 있는 전형적인 평좌상 도상으로, 왼손에는 상하 끝에 금속으로 마무리된 주장자를, 오른손에는 태환 염주를 각각 쥐고 있다.

바닥에는 무늬가 선명한 화문석 위에 자리를 깔고 그 위에 가부좌한 형상이며 등 뒤에는 의자 등받이가 세워져 있다. 청회색 장삼과는 대조적으로 배경은 연엽무늬로 장식한 적갈색 벽면, 남색의 테두리를 두른 황갈색 화문석, 현란한 무늬로 장식한 녹색 등받이 덮개 천 등으로 화려하게 처리하였다.

[특징]

녹색 법피가 드리워진 등받이 의자를 배경으로 소매가 긴 청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수한 방식이라든가, 왼손에 주장자, 오른손에 염주를 잡은 비슷비슷한 형식, 녹색 법피의 가장자리에 그려진 문양대와 배경 벽면의 화려한 장식성 등은 범어사원효(元曉)나 사명당(四溟堂), 해송당(海松堂) 초영(草英), 해운당(海雲堂) 민오(敏悟), 청암당(靑巖堂) 연백(演白) 등의 진영과 동일한 표현과 기법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이것은 동시기에 같은 화승에 의해 일률적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특히 배경에 팔걸이 없이 의자 등받이만 묘사된 점은 18세기 후반 이후 의자상에서 바닥에 가부좌한 평좌상으로 표현 형식이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우운당 진희 대사 영정」범어사에 소장된 원효나 사명당 등 특정 진영이 한꺼번에 조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정된 구도와 진부한 필치, 지나치게 장식적으로 묘사된 점 등 19세기 후반 진영의 형식과 여러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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