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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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湛海堂德基大師影幀 |
영어의미역 | Protrait of Monk Duckgi-dang |
이칭/별칭 | 「담해당 덕기 대선사 진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미경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 소장된 일제 강점기 고승 덕기(德基)의 영정.
[개설]
고승 진영(高僧眞影)은 덕 높은 승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담해당 덕기대사 영정(湛海堂德基大師影幀)」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두 차례에 걸쳐 범어사 주지를 역임했던 덕기를 그린 영정이다. 덕기는 울산 출신으로 속성은 이씨이며, 휘는 덕기, 당호는 담해(湛海)이다. 18세에 출가한 덕기는 우봉 대사(友鳳大師)의 수법 제자(受法弟子)이며 태고(太古) 보우(普愚)의 19세손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활동하였다.
범어사에 소장된 불화의 화기를 통해 덕기의 행적을 살펴보면, 1905년 팔상전 아미타 후불탱(八相殿阿彌陀後佛幀)을 조성할 때 산중 시주질로 참여하였으며, 이듬해인 1906년 팔상전 중건 상량문(八相殿重建上樑文)에도 이름이 보인다. 같은 해 십육전(十六殿)이나 천태전(天台殿)의 중건 때는 불사를 주관하는 도감(都監)을 맡았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33년 7월 8일 세수 74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였으며 범어사 승탑원에 덕기의 방광탑과 남천(南泉) 한규(翰圭)가 쓴 「담해당 대선사 비명 병서(湛海堂大禪師碑銘幷序)」[1934]가 전하고 있다.
[형태 및 구성]
「담해당 덕기대사 영정」의 크기는 세로 126.2㎝, 가로 87.5㎝이며 면 바탕에 채색을 베풀었다. 상단 오른쪽에는 ‘총림대덕 일산총령(叢林大德一山摠領)’이란 승직을 적어놓았고, 맞은편에는 일봉당(一鳳堂) 경념(敬念)[1936년 입적]이 쓴 제찬이 적혀 있다.
「담해당 덕기대사 영정」에서 덕기는 왼손에 주장자를 잡고, 염주를 쥔 오른손은 팔걸이에 얹고 의자에 앉은 모습인데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틀고 있다. 얼굴은 정면을 응시한 채 입 가장자리가 약간 쳐지면서 꽉 다문 모습이 엄격하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덕기가 입고 있는 회갈색 장삼은 옷 주름 선을 먹의 농담으로 음영 처리하였으나 매우 형식적이다. 육각형의 다리와 여의두형의 손잡이를 가진 의자 등받이는 청색 바탕에 연화문과 그 가장자리에 여의두문 띠 장식이 있는 덮개 천으로 화려하게 처리하였다. 배경은 이와 대비되게 각종 길상무늬로 장식한 홍색 벽면, ‘亞’자형 무늬로 테두리를 두른 화문석은 노란색으로 전면을 처리하여 화면을 밝게 부각시켰다.
[특징]
「담해당 덕기대사 영정」에서 신체는 오른쪽으로 약간 튼 측면상인데 비해 안면은 앞쪽을 응시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다소 특이한 전신 의자상 형식이다. 의자상은 평좌상보다 앞선 시기에 나타나는 형식이지만, 「담해당 덕기대사 영정」은 앞 시기의 형식을 답습한 복고 양식으로, 회갈색 장삼의 음영법이나 양청·홍색·황색을 사용한 강한 색조 대비는 전대의 고승 진영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며, 근대적 화풍이 강한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담해당 덕기대사 영정」은 화려하며 강한 색조의 대비나 음영법, 사실성이 떨어지는 가사 끈고리, 주장자의 형태 등에서 20세기 이후의 근대적 화풍을 잘 살리고 있는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