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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암당 경의 대사 영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356
한자 蔚庵堂敬儀大師影幀
영어의미역 Protrait of Monk Ulam-dang
이칭/별칭 「울암당 경의 대선사지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유물/유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화
서체/기법 견본 채색
소유자 범어사
관리자 범어사 성보박물관
현 소장처 범어사 성보박물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지도보기
원소재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출토|발견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선승 경의(敬儀)의 영정.

[개설]

고승 진영(高僧眞影)은 덕 높은 승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울암당 경의 대사 영정(蔚庵堂敬儀大師影幀)」은 울암당(蔚菴堂) 경의의 초상화로, 진영 속 경의는 바닥에 앉아 몸을 오른쪽으로 튼 가부좌상으로 그려졌다. 경의에 관한 자세한 행장은 알 수 없으나 종정(宗正)을 지냈고, 1812년경에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울암학계(蔚庵學契)가 조직되었다. 이후 1839년(헌종 5) 범어사 중수 불사 때 동(銅) 30관을 헌납하는 등 경의는 재력가로서 많은 시주를 하였고, 당시 백암, 연총, 연첨과 함께 ‘산중의 보배’라는 칭송을 받았다고 전해 오는 것을 볼 때 19세기 전반에 범어사에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및 구성]

「울암당 경의 대사 영정」은 세로 126.5㎝, 가로 91.0㎝ 크기로 비단에 채색을 베푼 것이다. 진영 왼쪽에는 영제(影題)를 적고 있으나 거의 박락된 상태이며 반대편에는 청담문인(淸潭門人) 의전(倚琠)이 기술한 찬문이 적혀 있다. 「울암당 경의 대사 영정」 속의 경의는 오른쪽을 향한 측면상의 좌안 7분면으로 화문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에는 염주를, 왼손은 주장자를 쥐고 있고, 등 뒤에는 의자 등받이가 배치되어 있다.

얼굴은 검은 편이며 음영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가는 필선만으로 이목구비와 주름살을 그렸는데 처진 눈매, 입가에 깊게 패인 주름이 노덕의 연륜을 말해주며, 대상을 꿰뚫는 듯한 눈동자와 야무지게 다물고 있는 입은 평소 대선사로서 경의의 성품을 가늠케 한다. 앞으로 살짝 굽은 어깨에서 노쇠함이 느껴지며, 경의가 입고 있는 백색 장삼과 홍가사는 다부진 입매에서도 베어나는 선승으로서의 품위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소박한 법의에 비해 등받이 덮개 천은 가장자리를 현란한 무늬로 마무리하여 장식적이며 밝은 청색으로 처리하여 대조를 이룬다. 배경은 녹색 벽면과 화문석이 깔린 바닥으로 나뉘어져 있다.

[특징]

「울암당 경의 대사 영정」은 전반적으로 백색이 많이 가미되어 다소 가라앉지 않은 듯한 요소가 보이나, 대사의 안면 묘사에서는 약간 눈을 찌푸린 표정이 고승의 심성을 미묘하게 표출하여 사의(寫意)적인 면이 드러나는 우수한 작품이다. 그러나 인물의 포즈와 등받이 배치가 조화롭지 못하여 마치 별개의 것이 화면 속에 배치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길상무늬로 장식한 벽면이라든가, 화려한 보상화문으로 장식한 등받이의 덮개 천, 음영 없이 가는 필선만으로 표현한 얼굴, 주장자와 염주를 쥔 손 표현, 오른팔 등의 산을 이루는 주름선 표현이나 장삼 자락이 하단 바닥 중앙에서 볼록하게 솟아오른 표현 등은 모두 김룡사 소장의 「응암당지원」, 「정봉당 경현 진영(靜峯堂景賢眞影)」 등의 표현과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필선과 표현법은 주로 사불산 화파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제작 시기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형식으로 보아 19세기 중·후반경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울암당 경의 대사 영정」은 조선 후기 고승 진영 중 바닥에 가부좌한 평좌상 형식을 나타내는 진영으로 19세기 진영의 특징과 흐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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