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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300
한자 孫晉泰
영어음역 Son Jintae
이칭/별칭 남창(南滄)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강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육자|역사 민속학자
성별
본관 밀양
대표관직|경력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
출생 시기/일시 1900년 12월 28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2년 - 구명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24년 - 와세다제1고등학원 졸업, 와세다대학 사학과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 -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조선 고가요집』 발간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동양문고 사서로 취업, 『조선 민담집』 발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조선민속학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33년 - 『조선 민속』 발간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연희전문학교 강사, 보성전문학교 강사에 임명, 진단학회 설립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조선 민족 설화의 연구』 발간
활동 시기/일시 1948년 - 문화교육부 편수 국장에 임명,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 『조선 민족사 개론』 발간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납북
추모 시기/일시 2002년 12월 - 이달의 문화 인물에 선정
출생지 경상남도 동래군 사하면 하단리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양산군 좌이면 남창리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수학|강학지 구명학교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지도보기
수학|강학지 와세다대학 - 일본 도쿄도
활동지 동양문고 - 일본 도쿄도
활동지 연희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134
활동지 보성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5가 1
활동지 서울대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121

[정의]

근현대에 활동한 부산 출신의 역사 민속학자.

[활동 사항]

손진태(孫晉泰)[1900~?]는 1900년 12월 28일 경상남도 동래군 사하면 하단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남창(南滄), 아버지는 손수인이다. 5세 때 해일로 어머니를 잃고, 집이 유실되자 양산군 좌이면 남창리(南倉里)[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로, 이사하여 12살 때까지 살았다. 손진태의 호 남창은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 이름에서 딴 것이다. 손진태는 구포 구명학교[현 구포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중동학교[현 중동중학교]에 진학하였다. 1919년 구포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구포 장터에서 열린 3·1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4개월간 부산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였다. 1921년 최규동(崔奎東)의 도움으로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24년 와세다제1고등학원을 졸업하였다. 그해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여 일본 문화 사학을 이끈 쓰다 소기치[津田左右吉]와 인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니시무라 신지[西村眞次] 등의 영향을 받아 인류학과 민속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손진태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 수차례 경상남도 해안 일대와 경상북도, 경기도 강화, 서울, 황해도, 평안도 지역을 답사하여 설화, 무가(巫歌) 등의 민속 자료를 수집하고, 현지 조사를 토대로 시베리아, 만주, 몽골, 중국, 일본 등의 주변국과 우리나라의 민속을 비교하여 그 전파 경로를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문헌 연구를 통해 민속 문화 각각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규명함으로써 민속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1930년 일본의 동양학 전문 도서관 겸 연구 기관인 동양문고에 사서로 들어가 당시 동양학의 대가이자 만선 사학(滿鮮史學)[만주와 조선의 역사를 하나로 보는 관점]을 주장해 온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를 만나 학문적 교류를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일본 학사원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아 우리나라 무속에 대한 현지 조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1932년 이마무라 도모[今村鞆], 송석하(宋錫夏), 정인섭(鄭寅燮) 등과 조선민속학회를 조직하였고, 1933년 우리나라 민속을 소개하는 『조선 민속(朝鮮民俗)』을 발간하였다. 1934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서 동양사를 강의하면서 진단학회(震檀學會) 설립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9월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로 옮겨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면서 문명사를 강의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문화교육부 편수 국장을 맡았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장을 거쳐 문과대학장을 지내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났다. 손진태삼각산에 은신해 있다가 발각되어 납북되었다. 북한에서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고, 1960년대 중반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손진태는 1930년대 후반 여태까지 쌓아 온 역사 민속학의 토대 위에서 신민족주의에 입각한 한국사 연구를 본격화하였다. 신민족주의는 좌익과 우익의 갈등, 새로운 국가 건설의 방향을 놓고 여러 사상과 계파가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해방 공간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구별이 없는, 민족 구성원 전체의 균등한 행복과 친선을 강조하였다. 이 때문에 참담한 민족적 현실을 타개하려는, 적극적 실천성을 띤 사관으로 평가받아 왔다. 반면 계급 투쟁을 부정하고, 역사 동력에서 계급적 요인을 배제한 점, 도덕적 기준에 의한 역사 해석 등으로 말미암아 역사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이해를 저해하였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손진태가 쓴 민속학 저서로는 『조선 고가요집』[1929], 『조선 민담집』[1930], 『조선 민족 설화의 연구』[1947] 등이 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1948], 『조선 민족사 개론』[1948], 『국사 대요(國史大要)』[1949] 등 한국사 관련 저서도 남겼다.

[상훈과 추모]

2002년 12월 문화관광부가 뽑은 ‘이달의 문화 인물’에 선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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