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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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水寺阿彌陀三尊圖 |
영어의미역 | Amitabha Buddha Triad at Unsusa |
이칭/별칭 | 「운수사 아미타도」,「운수사 아미타탱」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로219번길 173[모라동 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미경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운수사에 전래되는 조선 후기의 아미타삼존도.
[개설]
운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로 원효의 창건설이 전하고 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1660년(현종 1)에 중건하였으며 이후 사세가 확장된 것으로 짐작된다. 운수사아미타삼존도(雲水寺阿彌陀三尊圖)는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 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화불을 갖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입상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도로 아미타 정토 신앙에 입각하여 조성된 불화이다. 화면 하단에 적혀 있는 화기에 운수사의 정결 도량(淨潔道場)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의식을 진행하던 공간에서 사용하던 불화로 추정된다. 2008년 9월 11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운수사아미타삼존도의 크기는 세로 68.2㎝에 가로 66㎝로, 비단에 채색을 베푼 족자형 불화이다. 현재 안료의 변색과 박락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하지 못하며, 배면 중앙에는 세로 3행의 다라니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고, 네면 모서리에 붉은색의 범자가 한 자씩 적혀 있다.
화면에는 중앙의 아미타불 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 입상을 배치하였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아래에서 솟아 오른 청색 연화좌 위에 앉아 오른손은 항마인을, 가슴 앞까지 올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미타정인을 하고 있다. 양쪽 협시 보살은 모두 녹색 두광에 백색 거신광을 갖추었는데, 좌측에는 보관에 화불(化佛)을 정대하고 손에 여의(如意)를 잡고 있는 관세음보살을 입상으로 배치하고, 우측 보살 역시 여의를 쥔 보살상으로 묘사하였다.
아미타불의 도상은 미타정인과 항마인을 양손으로 모두 표현하고 있어 좌측의 관세음보살이 없다면 자칫 석가불로 볼 수 있다. 뾰족하게 솟은 나발의 머리에는 정상 계주와 중앙 계주가 모두 표현되었는데, 담주색으로 원호를 그어 표현하였다. 넓고 둥근 얼굴, 짧은 눈썹에 비하여 지나치게 위로 치켜 올라간 눈초리의 표현, 선홍색 선묘로 그려진 코와 입술 등에서 날카로운 모습이 느껴진다. 육신부는 황토색으로 설채하였고 육신선은 먹선 위에 담주색을 그어 윤곽선을 표현하고 있다. 착의는 짙은 적색의 변형 통견으로 적색 대의의 단 부분은 군청색으로, 안감은 밝은 청색으로 마무리하였다.
좌우 협시 보살 역시 아래에서 솟아 오른 연화좌 위에 대칭적으로 서 있다. 육신부는 본존과 같은 황색으로 베풀고 통통한 얼굴은 담주선으로 윤곽선을 그렸으며 길게 반원을 그린 녹색 눈썹 사이에 백호를 점으로 표현하였다. 치마는 백색의 몰골 기법으로 면을 처리하여 20세기 초에 조성되는 불화에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보살이 발을 올리고 있는 연꽃의 연밥에는 흰색 안료가 두툼히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다. 전반적으로 항마인과 설법인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본존불의 수인이라든가, 좌우 협시 보살의 불분명한 도상적 특징, 백색 신광의 표현, 솟아 오른 연화좌의 표현 등 19세기 이후부터 근대기에 이르는 혼재된 도상의 양상을 살필 수 있다.
[특징]
운수사아미타삼존도는 치켜 올라간 눈초리의 표현이나 뾰족하게 솟은 나발의 머리 표현, 허리까지 늘어뜨린 보발 등의 표현은 고식적 요소를 답습한 것이나, 전반적으로 20세기 불화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데, 수인으로 항마인과 설법인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점과 좌우 협시 보살의 뚜렷하지 않은 지물, 양청색과 백색의 남용, 보살 군의의 몰골 기법 등에서 근대기의 혼재된 도상적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운수사아미타삼존도는 화기를 통해 조성 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작품으로, 당시 불화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