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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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雲澤 |
영어음역 | Son Untaek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모분재로 19[구포1동 1195-2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경업 |
[정의]
부산 지역에 전승되어 온 구포 대리 지신밟기의 재현자이자 소리꾼.
[활동 사항]
손운택(孫雲澤)[1936~1999]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근계리 곤실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손석륜은 방앗간을 경영하면서 안강읍에 빙과류 공장·가구 제작 공장을 경영하는 지역 유지였다. 손운택은 7남매 가운데 차남이었다. 집안에 머슴이 둘 있었는데, 이 가운데 큰 머슴인 김정달(金定達)이 우리 소리를 곧잘 하였다. 어린 시절에 손운택은 김정달을 따라 장단을 배웠으며 팔도 소리와 민요를 익혔다. 김정달이 손운택의 소리 선생이었던 셈이다. 손운택의 부친 역시 장구 솜씨가 뛰어나 한때 경주 교방에서 장구를 가르쳤고, 민요나 「창부 타령」도 일품이었다. 고모부인 한인석은 민속을 꿰뚫은 인물로, 손운택이 민속을 이해하고 전승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6·25 전쟁 직후 어머니가 괴질로 운명하고, 아편 중독자가 서모로 들어오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이에 형과 누이가 뿔뿔이 흩어지고 동생을 책임진 손운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방앗간 기술자였던 매형의 집에 얹혀살았다. 14세에 방앗간 주인 덕에 한문을 깨친 후 손운택은 육군 하사관에 지원하였다. 군대에서 풍물패 군단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8년 후에 제대하여 매형을 찾아 삼천 탄광촌에 들어갔다. 여기서 장성광업소 농악팀을 창설하였다. 이로써 6개 광업소 경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손운택은 1977년 부산시 서구 구평동[현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으로 이주하였다. 1987년 구포 시장에서 노점으로 고추 장사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아미농악패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이때 부산시 북구 구포1동 마을 풍물패에 합류하게 되었고, 북구 낙동문화원에서 추진하는 낙동민속보존회 결성에 동참하면서 감동진의 옛 전통을 되살리는 일에 앞장섰다. 1989년 낙동민속보존회가 창립되어 구포1동에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구포 대리 당산굿을 재현하고 지신밟기의 원형을 찾아 옛 꼴을 복원하게 되었다. 손운택이 상쇠와 앞소리를 매기고 보존회 회원들을 독려하여 ‘구포 대리 지신밟기’를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소싯적부터 탄광에서 일한 것이 원인이 되어 손운택은 평생 병으로 고생하다가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